산사춘 복분자 오가피주 백세주 매실주는 물론이거니와 막걸리 한 병을 마시다가도 그 병을 들어 만든 곳을 확인하는 일 그때마다 나는 경상북도 문경의 어느 오래된 술도가 골목을 더듬더듬 헤매지도 않고 흘러들어가게 된다 산사나무 열매나 복분자 오가피 냄새와 시큼덜큰한 막걸리 냄새가 흘러나오는 그 골목을 찾아들면 누런 냄새 위에 쓰러져 누운 술꾼이 있고 술지게미를 얻어먹고 비틀거리는 개가 있고 삐끔 열린 솟을대문 안에는 조금쯤 요망한 자세로 누워 깔깔거리는 여자들이 있다 어느새 나는 노란 한되들이 술 주전자를 들고 한모금 두모금 마시며 가는 간 큰 애가 되어 미나리꽝이나 앞산이나 저수지가 타박타박 내 눈 속을 아프지도 않게 걸어들어오는 것을 보며 하늘과 땅과 마을과 들판 중에서도 내가 참 크다 하고 돌아앉은 뒷산도 그때만큼은 내 편이란 생각을 하며 이런 술도가가 있는 우리 마을을 내가 참 사랑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옆집 새댁이 내는 스란치마 소리처럼 조금쯤 은밀하고 조금쯤 세상에서 붕 떠나 있는 그 술도가 골목을 어린 나는 어미의 품처럼 파고들었으니 지금도 술을 받아놓고 술병을 들고 소재지를 확인하는 나는 술 한잔 마시지 않고도 어느새 그 많은 술도가를 다 편람한 듯 마음이 화끈해지고 그 골목에서 술꾼들의 오줌을 다 받아먹고 사는 맨드라미 모양 너도 나도 이해할 수 있는 수굿한 고개가 되곤 한다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자라 』『 아주친근한 소용돌이』『입술을 건너간 이름』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