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잘 버려진 소파/정병근
김욱진
2014. 9. 18. 15:16
잘 버려진 소파
정병근
목 없는 부처처럼
들판에 소파가 앉아 있다
참 잘 버려놓았다
그를 앉았던 목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소파는 버려져야 소파지
목이 없어야 버려졌다고 할 수 있지
소파는 그리 볼 것 없다는 자세로
비를 맞고 볕을 쬐고 밤을 새면서
사람의 은유를 지우고 있다
한 백년 한 백년
사람 닮은 죄를 털어내고 있다
등에는 이끼가 번지고
무릎에는 풀씨들이 싹을 틔웠다
가끔 되새나 참새들이 날아와서
놀다 가기도 한다
지붕 없는 천애의 장좌불와
소파는 활활 타는 꿈을 꾼다
목이 마르다
목 없는 목젖을 삼키다가
이 무엇인가, 이 무엇인가*
소파는 다시 몸에 열중한다
* 불교 수행의 화두 ‘이 뭐꼬?’를 차용.
『시와 사람』(2014.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