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진 2016. 11. 9. 19:17

          소리실댁 

  

 

  처녀 공출 바람에

양반 가문이라는 소문만 듣고

땟거리도 없는 종갓집 

열여섯에 시집 온 산골 여자 

서른 다 되도록

손 이을 자식 하나 낳지 못해

입 꼬리 촉 처진 여자

이집 저집 동냥한 쌀 한 됫박 이고

담뱃대 문 시어미 눈치 보며

삼십 리 밖 돌부처한테 흠뻑 빠진 그 여자  

이 다 빠진 자리에다

그 남자 웃음만 빼곡 심어놓은

속 텅 빈 그 여자 

입 꾹 다물어도 합죽해진 볼선 따라

웃음 절로 번지는 그 여자  

간신히 빚은 나를 돌 아이라고 부르는

그 여자, 손수 바느질해둔 수의가 헐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