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항아리 / 노원숙
김욱진
2017. 1. 22. 02:32
항아리
노원숙
길 위의 햇살이 여러 번 열렸다 닫히고,
음력의 낮과 밤이 곰팡이처럼 피었다 지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서성이던 말 못할 소문들
갸웃, 돌아가고 나면
무릎 꿇은 간기마저 모두 껴안고
제 몸을 내주곤 했을,
항아리 속, 고요하다
장독대를 무수히 오가는 동안
나를 거쳐 간 수많은 상념들도
발효와 부패의 어느 쯤에서 출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날것들의 거칠고 모난 이름을 호명하며
굵은 소금 한 줌씩 행간마다
켜켜이 뿌려주기도 했다
그 곁에서,
바람도 저마다의 발걸음으로 가라앉곤 하였으리
세상을 건너온 열매들 제 속의 과즙 비워내는 동안
어두운 날짜들 솎아내던 나의 하루는 길었고
봄은 바람의 페이지를 저 홀로 필사하기도 했다
깊고 캄캄하고 끝없는 기다림의
내간체(內簡體)
한
권,
맛을 보자, 묵은 말씀들이 혀끝에서 환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