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색/심강우

김욱진 2017. 8. 17. 11:05

          색

​                  심강우

  

사태가 났다

무너져 내린 단풍의 잔해로

욱수골 저수지 가는 길이 막혔다

붉은색이 엷어져 가는 세월이었다

당신과 나눈 말들이 몇 번 피고 졌는지

옹이로 갈라진 내 몸피를 보면 알 수 있을는지,

물의 냄새에는 여태 지워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

저장고의 시간은 묵은 화약처럼 푸슬푸슬 흘러내린다

저수지 가는 길, 검붉게 찍힌다

짙은 색들은 서로를 온전히 담지 못한다

계절이 만나는 둑길, 겹쳐진 색 한가운데에 서서

나는 방금 바람이 복원한 파랑을 내려다본다

경사진 마음에 희미한 목소리들이 찰랑거린다

내 몸의 낡은 색들이 물에 풀려 간다

시간은 색이다, 아주 오래 전

당신이 짙어지면서 내 몸은 묽어져 갔다

내 몸이 그린 곳곳에 당신의 바탕색이 있었다

계절마다 다른 색으로 묻어나면서 나는 이제

채도와 명도가 너무 낮은 색,

어느덧 저수지에 또 다른 색이 어린다

무너져 내린 단풍이 여기까지 밀려온 것일까

거기 초록의 웃음 하나가 하얀 미소에 스며드는 걸

본다, 내가 물들었던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내 온몸을 다 그려도 아깝지 않았던 색, 당신

욱수골 : 대구 시지 욱수동에 있다.

 

시집『색色』2017. 현대시학 시인선 41

심강우 시인

대구 출생

2013년 수주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2014년『월간문학』신인작품상 시부문 당선

1996년《동아일보》신춘문예 동화 당선

2012년《경상일보》신춘문예 소설 당선

동시집『쉿!』 시집『색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