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나팔꽃/송수권

김욱진 2010. 10. 1. 09:23

            나팔

                        송수권

 

 

 

 

바지랑대 끝 더는 꼬일 것이 없어서 끝이다 끝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 보면 나팔꽃 줄기는 허공에 두 뼘은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아침 구름 두어 점, 이슬 몇 방울

더 움직이는 바지랑대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덩굴손까지 흘러나와

허공을 감아쥐고 바지랑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젠 포기하고 되돌아올 때도 되었거니 하고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면 가냘픈 줄기에 두 세개의 종까지 매어달고는

아침 하늘에다 은은한 종소리를 퍼내고 있는 것이다.

이젠 더 꼬일 것이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우리의 아픔도 더 한 번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는 나는 법일까.

 

 

- 꽃시 그림집 공저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