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액면가/윤준경

김욱진 2018. 1. 30. 08:49

         액면가

​               윤준경

 

나는 나를 늘 싸게 팔았다

아예 마이너스로 치부해 버렸다

내세울 게 없는 집안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고

나는 그 말에 육십년이나 절었다

그래서 나의 액면가는 낮을 수밖에 없고

때로 누가 나에게 제 값을 쳐주면

정색을 하며 다시 깎아내리곤 했다

자신의 액면가를 곧잘 높여 부르는 이들도 있는데

겉으로는 끄덕끄덕하면서도

속으로는 씁쓸하다

그들의 액면가는

부르는 만큼 상종가를 치기도 하는데

나는 늘 나의 값을 바닥에서 치르며

흘끔흘끔 앞뒤를 곁눈질 한다

깎이고 깎인 액면가가 내가 되었다

이제라도 제값을 받아보자고

큰소리 한번 치고 싶은데

유통기한이 끝나간다

무릎이 저리다 


윤준경/시집 『나 그래도 꽤 괜찮은 여잡니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