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양파/안명옥

김욱진 2018. 8. 11. 09:28

         양파

              안명옥

여자만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양파 몸을 벗길 때마다

양파는 나 대신 운다


미끌미끌한 것은 양파의 유머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려는 양파의 자유다


양파는 칼날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수많은 실핏줄을 감추고


몸 속 깊이 자궁을 숨기며

파란 싹을 피워내고 있다


양파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해맑은 표정 속

매운 향기가 쟁여있다


연애 한번 하자고 옷을 벗기다가

내 속을 들여다보고

당신은 자꾸 울었다


―시집 『뜨거운 자작나무 숲』(리토피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