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너를 기억할 수 없게/박지영
김욱진
2019. 3. 12. 14:54
너를 기억할 수 없게
박지영
제발 부탁이야
그날이 오면
나를 냉동시켜줘
영하 196도로 얼려줘
뇌도 덜어내고 갈비뼈도 뜯어내고
심장과 콩팥도 떼어낸 다음
내 몸의 기억들도 다 얼려줘
오오 나는 북극 빙하의 크레바스에 갇힌
얼음 막대기
냉동고에 잠들어 있으면
화끈화끈 열이 날 거야
웅웅거리는 소리가 마치
지구 돌아가는 굉음 같을 거야
이백 년 후 어느 날
내 차가운 입술에
따뜻한 온기가 닿으면
살며시 눈뜰 거야 다시
맥박이 뛸 거야
이백 년 후 깨어날 때
그땐 내가 없는 나였으면 좋겠어
- 계간 《시와 사상》 2018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