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꺼리
나의 시답잖은 시론
김욱진
2025. 5. 14. 08:46
나의 시답잖은 시론
김욱진
오늘 참 먼 길을 왔습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68년이 걸렸네요.
제가 이 집까지 오게 된 것은 참으로 기적입니다.
멀고도 가까운 이곳
강문숙 선생님과의 시절 인연이
여기, 지금, 나와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귀하고 소중한 인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답잖은 시집 한 권이 因이었고
성주에 있는 선원 카페에 강물소리
몇몇 시인님들과 동행한 것이 緣이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닿은 이 인연의 줄이 이토록 끈끈하게 이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마는
나는 분명 지금, 여기 있습니다.
여기 함께하신 선생님들 모두 나를 한번 찾아 보십시오.
여기, 지금, 나는 어디 있습니까?
저기 마당에 서있는 나무를 한번 보십시오.
제 말에 속지 말고
저 나무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나와 너 가닿은 저기,
저 순간이 바로 나입니다.
나와 너 둘 아닌 저 자리
우리가 여태 찾아 헤맨 그 마음자리입니다.
머물되 머문 바 없이 머문 그 자리지요.
나와 너와 나무가 하나 된 본래 자리지요.
저곳에 절대 고독이 있고
저곳에 진실이 머물고 있습니다.
저곳에 나와 너 둘 아닌 나,
무가 있습니다.
저곳에 말 없는 말이 수북 담겨있습니다.
저곳에 무수한 시상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실컷 받아 적으십시오, 저기
나무들이, 새들이, 꽃들이 하는 말들을ᆢ
이게 나의 시답잖은 시작법이고
이게 나의 살림살이입니다.
편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