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탕자의 기도 /손택수
김욱진
2025. 6. 11. 09:17
탕자의 기도
손택수
나무는 종교가 없는데도 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여러 종교를 가져보았지만
단 한번 기도다운 기도를 드린 적이 없다
풀잎은 풀잎인 채로, 구름은 구름인 채로,
바람은 바람인 채로 이미 자신이 되어 있는데
기도도 없이 기도가 되어 있는데
사람인 나는 내가 까마득하다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타향살이다
제자리걸음으로 천만리를 가는 별이여
떠난 적도 없이 끝없이 떠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바위여
누가 세상 가장 먼 여행지를 자기 자신이라고 했던가
명소란 명소는 다 돌아다녀봤지만
흔들리는 꽃 한송이 앞에도 당도한 적 없는 여행자
하여, 나는 다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이 부끄러움이나마 잊지 않고 살게 해달라고
이생에 철들긴 일찌감치 글러먹었으니
애써 철들지 않는 자의 아픔이나마 잊지 않게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