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특보
최영정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맨 꼭대기 층 강의실에, 우린 철새처럼 앉아
길을 묻어보곤 했다
점자를 짚어내듯 취업 공고문을 손 짚어 읽다보면
자주 길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간판도 없는 술집에 앉아
눈발이 거세지는 서로의 눈을 닦아주거나
촛불이 되어 대신 울어주며
발치 할 수 없는 희망을
계산서에 빼곡하게 부적처럼 적어두곤 했다.
취할수록 편안해지는
거짓말이 늘수록 새 하얀 세상
자취방에 앉아,
바라본 창밖의 검은 하늘
밤이 별의 관절 속에 못을 박고 있다.
수의
해두면 오래 산다는 말에 미리 지어둔
수의,
웃돈까지 주며 맞춘 것 치곤 너무 볼품이 없다.
헐벗은 것보다
그나마 조금 나은 가벼움마저 없다면,
빨래 걱정 덜어내 줄
욕심 없는
저 누런 빛깔이 아니라면,
무르자고 성화라도 낼 판인데.
시골에 둔 누렁이 쓸어주듯 곱다, 참 곱다 하신다.
일평생 처자식 뒷바라지만 알고
까막눈이 된 게,
이제 막,
새 옷 한 벌 얻어 입는 게
저토록 신명이 나는 일인 것일까.
이젠, 먹지 않아도 배부를 것 같다하시더니
밑이 트인 자루처럼 먹은 걸
자꾸만,
도로 게워내신다.
내 등에 업힌,
수위 한 벌
벌레 먹은 사과보다 가볍다.
망치를 맞다
액자의 뒤편처럼
어둠이 짙게 서린 야시장에는
못과 같이,
억척스레 삶을 붙들고 사는 이들이
밤하늘, 별들의 묵고 시린 기침보다 가득하다
처자식만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묵묵히 가정에 못 박혀 살아온
사내부터
허리가 한껏 휜 노인까지.
주어진 한 줌의 삶을
소란스럽게 흔들며 일구는 사람들.
그들이 쏟아내는 힘겨운 한숨마다
오지 않은 미래를 보는 듯
삶의 탁한 기후와 온기가 끈끈하게 전해진다.
그 모습을 보며,
이제껏 사소한 일에도 삐걱거리며
어긋나기만 했던
나를 가만히 망치 밑으로 들이밀어 본다.
망치질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유령도서관
밤이 개관 되면, 옥상 가득 펼쳐지는 별자리
우린 그 책을 빌린 적이 있다
연체된 지도 모르고...
서로 다른 꿈을
달의 담벼락에 빼곡히 적어놓고,
밤새 여기 저기 꽃가루를 묻히며,
새벽이 짓눌린 골목에서 공기처럼 뛰어놓았다.
다른 이정표를 보며 걷다가,
학벌이 없다는 게,
뒤를 받쳐주는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
말 못할 아픔으로
퉁퉁 사랑니처럼 붓고 나서야
서울의 밤하늘에
밀서처럼 감춰진 별들을 꺼내어 읽어볼 수 있었다.
장기
영토가 장기판과 같이 둘로 나뉘고도,
한 수도 물러섬이 없는 지금 이 팽팽한 시점이
한데 나고 한데 지는 별들에게
얼마만큼이나,
낮 부끄러운 일인지
왜 그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것일까.
지키지 못할 거짓말에
속고 우는 국민들은,
언제까지 경첩처럼 가슴에 못을 박고 살아야 하나.
문득, 네모진 칸칸이
서해안에 자리한 섬과 같아 보인다.
숨고를 틈 없이
온 사방에 철책선이 휘둘러 쳐진...
그래도,
목숨을 담보 삼아,
근근이 바다로 나가 살던
사람들에게
언제까지 정부는 무리수를 둘 것인가.
방치된 산새의 알처럼
겁에 떨며,
물방울로 웅크린 그 한 소년을 보고도
어찌 눈뜨고 태극기를 볼 것인가.
쉽게 들리던,
플라스틱 장기알이 천근만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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