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943

언젠가는 / 한용운

언젠가는한용운  ​언젠가... 말 못할 때가 옵니다. 따스한 말 많이 하세요. ​​언젠가... 듣지 못할 때가 옵니다. 값진 사연 값진 지식 많이 보시고 많이 들으세요.​​​언젠가... 웃지 못할 때가 옵니다. 웃고 또 웃고 활짝 많이 웃으세요. ​언젠가... 움직이지 못할 때가 옵니다. 가고픈 곳 어디든지 가세요. ​​언젠가... 사람이 그리울 때가 옵니다. 좋은 사람 많이 사귀고 만나세요. ​언젠가...감격하지 못할 때가 옵니다. 마음을 숨기지 말고 마음껏 표현하고 사세요. ​​언젠가... 우리는 세상의 끝자락에 서게 될 것입니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해 후회없는 삶을 살다 가시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참한詩 2024.12.02

잊음 / 김륭

잊음김륭    그녀는 생선과 단 둘이 남았다*   나는 이런 문장이 참 마음에 든다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해지고 기다렸다는 듯 난간이 생긴다 나는 누워있고, 그녀는 생선과 함께 난간 끝에 위태롭게 서있다   그러나 어떤 고요는 말이 아니라 살이어서 그녀는 생선과 모종의 이야기를 길게 나눌 수도 있다   나는 그녀의 몸에서 비릿하게 흘러나오는 고백의 냄새를 맡는다 그녀가 울고 있다 가라앉고 있다 그녀의 생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사물들이 물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사히 가라앉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생선을 낳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나는 석쇠 위의 생선처럼 몸을 뒤틀며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그녀가 메기나 미꾸라지처럼 좀 기분 나쁘게 생긴 어떤 남자가 아니라 생선과 단 둘이 남았다는 ..

♧...참한詩 2024.10.14

획일화에 대하여 / 오승강

획일화에 대하여오승강  개펄을 걷는 저 게들산지사방 어딘가로 바삐 가고 있다옆으로 옆으로걸음이 참으로 일사불란하다누군가 구렁을 붙이는 것도 아닌데어쩌면 저렇게 똑같은 속도똑같은 몸짓 똑같은 집게발크기는 달라도 온전한 질서 정연이다허튼 모습도 없다개펄을 걷는 저 작은 게들똑같이 걷는 모습이우습게 보이던 걸음이당연했던 것들이문득 무섭다 소름이 돋았다

♧...참한詩 2024.10.03

아끼지 마세요 / 나태주

아끼지 마세요 나태주  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옷장 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옷 예쁜 옷잔칫날 간다고 결혼식장 간다고아끼지 마세요그러다 그러다가 철 지나면 헌옷 되지요​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랑스런 마음 그리운 마음정말로 좋은 사람 생기면 준다고아끼지 마세요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좋은 옷 있으면 생각날 때 입고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 싶은 때 먹고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은 때 들으세요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세요​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눈물 글썽일 일 있다 한들그게 무슨 대수겠어요!지금도 그대 앞에 꽃이 있고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그 꽃을 마음껏 좋아하고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참한詩 2024.08.28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와 나 사이이생진​​ 아내는 76이고나는 80입니다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네 기다리는 것입니다​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서로 모르는 사이가서로 알아 가며 살다가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인생?철학?종교?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참한詩 2024.07.16

나비 / 최승호

나비최승호 짐짝을 등에 지고 날거나,헬리콥터처럼 짐짝을 매달고날아가는 나비를, 나는 본 적이 없다. 나비는 바늘처럼 가벼운 몸 하나가 있을 뿐이다.몸 하나가 전 재산이다.그리고 무소속이다.그래서 나비는 자유로운 영혼과 같다.무소유(無所有)의 가벼움으로 그는 날아다닌다.꽃들은 그의 주막이요, 나뭇잎은 비를 피할 그의 잠자리다.그의 생은 훨훨 나는 춤이요, 춤이 끝남은 그의 죽음이다.그는 늙어 죽으면서 바라는 것이 없다.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죽을 때에도 그는 자유롭다. -덧붙임(반칠환 시인)“사실 나비는 영업사원이다.그는 천 개의 거래처 주막을 드나든다.한 주막에서 한 잔씩 잔술을 마신다.술에 약하지만 거절할 수 없다.고치에서 깨자 배운 게 이 직업이다.화려하면서도 쓸쓸한 주막을 나서면대낮에도 허공을 헛..

♧...참한詩 2024.06.06

행복은 내 안에 / 이진흥

행복은 내 안에이진흥   열세 살짜리 손녀 노트 첫 장에 ‘행복은 내 안에’라고 쓰여 있다. 행복은 잡을 수 없는 파랑새라는데 어린 것이 참 당돌하다. 파랑새를 찾아서 산 넘고 물 건너 멀리 갔다가 허탕 치고 지쳐서 돌아왔더니 그 새는 뜰앞 나뭇가지에 앉아있었다는 시구가 생각난다. 문득 창밖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커튼 사이로 내다보니 곤줄박이가 난간에 앉아 햇살을 쪼고 있다. 방금 티비가 보여주는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뉴스에 속이 상했는데, 저 작고 예쁜 새가 쪼는 햇살이 얼핏 내 안에 부싯돌처럼 반짝이며 왠지 모를 생명의 기쁨과 황홀의 순간을 열어준다. 그렇구나 아이야, 행복은 산 너머 저쪽 파랑새가 아니라 지금 내 안에서 반짝이는 햇살이구나. 바로 여기 생생하게 살아있는 자신을 잊고 산 너머 저쪽만..

♧...참한詩 2024.06.02

방천시장의 봄 / 이하석

방천시장의 봄이하석 ​대구 중구에서봄을 제일 먼저 파는 데는당연히, 방천시장 입구다.​겨울의 끝에서 먼 데 할머니가 캐 와서새삼, 수줍수줍 펴 보이는냉이의 봄 뿌리가 파라니희다.​어떻게 한 움큼 쥐어주든천 원을 안 넘어,아무도 못 깎는 절대의 봄값.​시장의 아침 그렇게 열어놓고일찍 장사 끝낸 할머닌또 손주 밥 먹일 때라며 서둘러버스로 돌아간다.​시장통 입구에종일 밝게 남아 있는,할머니 냉이꽃처럼 앉았던봄 성지(聖地)

♧...참한詩 2024.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