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그릇
강문숙
의자는 그릇이다, 흔들리면서 누군가의 몸을 담는다
그저 겸손히 받아들이면서 그의 생을 한순간 안아보는 것인데
설레임보다는 예고 없이 쿵, 떨어지는 심장 같은 것일 때가 많다
한 생이 담겨진다는 것은 희로애락의 지난한 은유일 뿐
오랜 시간 흘러왔을 내밀한 그리움과 고독, 또는
숨 가쁘게 걸어왔던 순간들이 버무려져 의자는 보이지 않게 우묵해진다
삐걱삐걱삐걱, 그래그래그래, (여자도 오랫동안 그릇이었으니)
저 소리는 한 생의 무게를 다 읽어낸 흐느낌이 배어 있는 그릇이
마음의 흔들림을 빙자하여 제 속에 고인 울음을 다스리려는 방편(方便)이 아닐까
저녁이 되는 것도 모르는 채 흔들의자와 여자는 오롯이 한 몸이다
한 생을 다한다는 것의 숭고함이란 누군가의 몸을 담아 보아야 안다
한 때 아이를 담고 있던 그 여자의 자궁처럼, 의자는
거실 한 귀퉁이에서 비스듬한 자세로 고요하게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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