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반道伴 도반道伴 저녁 공양 마친 개 한 마리가 방선放禪하듯 절집 마당을 빙빙 돌고 있다 너덕너덕 기운 옷 걸친 노스님이 혓바닥 길게 내민 견공의 목줄을 잡고 묵정밭 매듯 무심히 따라 돌고 있다 연못 속에 우두커니 물구나무선 내 가랑이 새로 길을 낸 물고기들이 바깥세상 환히 들여다보고 있다 법당 앞 반석 위에 쪼그리고 앉은 밤 고양이의 눈빛 휘돌아나가는 보름달처럼 짧은시 2022.04.28
아카시2 아카시2 가슴 한복판으로 물길 지나가는 오월이면 무뎌진 나의 혓바닥에도 너의 향기 가득 스며온다 겨우내 군침 흘린 꿀벌처럼 올 봄엔 훨훨 네게로 날아가 누구도 지울 수 없는 입술자국 하나 숨겨두고 싶다 짧은시 2022.04.28
우포늪 우포늪 철없이 날아드는 새들의 공항이다 온종일 비행하고 돌아온 흰두루미 떼 활주로 한복판 둘러앉아 아직 회항하지 못한 피붙이들에게 연착륙 신호를 보내며 고요히 저녁기도를 한다 또 어디론가 비상하려는 영혼들을 위해 빈 둥지 트는데 어둠을 밀어내며 불시착하는 재두루미 한 마리 짧은시 2022.04.28
지게 지게 가랑이 쩍 벌리고 가파른 언덕배기 홀로서는 법 네게 배웠지 저보다 무거운 짐 걸머지고 가볍게 버티는 법 네게 배웠지 바람 불어 휘청거리는 날 지겟작대기 곧추세우고 세 발로 걸어가는 법 무심코 알게 되었지 짧은시 2022.04.28
전철 안에서 전철 안에서 여든 살은 족히 된 할머니 한 분 꼬부랑 허리 지팡이 삼아 긴 동굴 속 걸어 들어와 무덤자리 찾은 듯 노약석에 기대서서 눈 감으신다 영정 사진 한 장 맞은 편 유리창에 걸렸다 한 송이 저승꽃 앞에서 일제히 고개 숙인 문상객들 떼무덤을 판다 짧은시 2022.04.28
참, 조용한 혁명 참, 조용한 혁명 거짓과 혼돈이 난무하는 세상, 참 꽃으로 뿌리내린 비슬산 사월의 민심은 아래서부터 위로 붉게 붉게 번져 천심을 사로잡았다 보이지 않는 손들의 참, 조용한 혁명이다 짧은시 2022.04.28
달팽이 뒷간 달팽이 뒷간* 병산서원 가면울타리 밖 하늘 열린 허름한달팽이 뒷간에 앉아큰 볼일 한번 볼 일이다흠흠, 인기척 소리 내며머슴살이 잠시나마 해볼 일이다풀지 못한 근심 다 내려놓고조용히 뒤돌아볼 일이다병산서원에서 한평생 머슴 노릇하고 있는달팽이 한 마리, 흠흠 *달팽이 뒷간:400여 년 전 안동 병산서원 입구 지어진 머슴들의 화장실로 달팽이 모양새임. 짧은시 2022.04.28
씨․1 씨․1 비닐하우스 안에서조기 합숙 과외 받고 자란씨 없는 수박혈서를 쓰기 시작한다이른 새벽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사고파는 사람들의 손아귀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비탈밭 한 모퉁이서씨내리할 씨 걱정 없이자식 농사나 지으며달콤하게 살고 싶었는데, 씨 짧은시 2022.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