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꺼리

[스크랩] 장시와 처녀시집과 시의 재미라는 것/강인한

김욱진 2011. 3. 1. 13:10

이 계절의 시집 산책】

 

장시와 처녀시집과 시의 재미라는 것

 

   강인한

 

 

 

        —조연호 장시집 『농경시』

        —유미애 첫 시집 『손톱』

        —권혁웅 시집 『소문들』

        —이제니 첫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

 

   올해 신춘문예의 심사평들을 읽어보면 예년의 불안한 자폐적 상상력이 판치는 기세가 한 풀 꺾이고(문화일보) 저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소리를 중언부언하는 시는 눈에 띄게 줄었다(세계일보)고 합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건 아마도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는지 예측할 수 없는 상상력의 심사자들이 참여하지 않은 탓이 클 것입니다. 한국 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그와 같은 심사자들의 불참은 앞으로도 계속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겨울, 꿈에게 다짐한다. 밤의 모호한 흔들림에 맺힌 핏방울처럼, 떠오르는 별로부터도 검게 윤이 나도록 너희는 배회로 허공을 치장하고 있었다. 내 작은 껍질을 자르기 위해 어버이는 물 양동이 하나 가득 아름다운 선율을 가져왔다. 가라앉은 부유물의 맛이라고 쓴 달력의 식후감은 매번 물통에 목마름을 쏟아부은 사람의 것이었다. 그간 너는 떠나는 집을 모아왔다. 또 하루가 부엌의 작은 칼에게 고드름처럼 녹는 나를 쥐여주고 있었다. 신체는 전신상을 비우는데 쓰여야 했다./ 겨울, 반박이 없는 꿈을 꾼다. 오늘 밤은 귀신에게서 나의 가루를 묻혀오게 될 것이다. 불 속을 뒹구는 몇 마리 짐승으로는 실은 군도(群島)를 그려보았네. 작고 창백하게 달려 있던, 내 것이었던, 껍질 잃은 달팽이에겐 진심으로 부엌칼을 꽂았네. 겨울은 늘 벌어진 깔때기처럼 잠든 나를 돌림병이게 했다. 입술은 낡은 주름을 암초에 던지며, 떠도는 대양(大洋) 전부를 타인의 질병에게 옮겨버렸다…….”

   조연호의『농경시』의 도입부입니다. 장편소설에 버금가는 2만여 단어로 이루어진 시집. 전체 174연으로 되어 있으며 낯선 어휘들, 사어에 가까운 한자어들이 난무하고 의미의 추구를 방해하는 난해성으로 중첩됩니다. 아니 이 시집은 한 편의 장시로서 오리무중(五里霧中)의 방황과도 같다고 할 것입니다.

   “한낮은 한낮을 색적(索敵)하고 말았다. 이 식(蝕)을 간직할 것이다.” 시집 앞에 놓인 ‘시인의 말’에서 열쇠를 구할 수 있을까 하고 읽어보지만 이 역시 상식적 해석을 방해하는 낯선 한자어의 출현은 독자를 당황하게 만들 따름입니다. 고백하건대 천금을 준다 해도 나는 도저히 못 읽겠습니다. 어디서 ‘서정’을 구하고 어디서 ‘아름다움’을 느껴야 할는지 기가 막힙니다.

   시집 한 권에 장시를 포함하여 모두 열세 편으로 묶은 이준규의 시집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도 독자를 바득바득 괴롭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반면교사(反面敎師)들이 지난날 전봉건의 장시『춘향연가』(1967)가 진실로 아름다운 서정시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단에 데뷔하고 그 이후 처음 내는 시집을 처녀시집이라고 하지요. 등단하고 3년이나 4년 만에 내는 게 보통인데 아주 드물게 35년 만에 첫 시집을 내어 눈길을 끄는 시인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 등단 무렵에 성장을 멈춘 듯 퇴색한 시편들을 대하며 느끼는 감정은 오랜 세월을 고스란히 견뎌온 것에 대한 연민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출하는 욕구를 안으로 다독이며 참다 참다가 낸 시집에선 알맹이 꽉 찬 석류를 쪼개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유미애 시인은 2004년 『시인세계』신인상에 「고강동의 태양」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처녀시집의 설렘과 매혹이 고스란히 담긴 유미애 시집 『손톱』을 읽는 건 바로 그 알찬 석류를 쪼개어 맛보는 일입니다.

   금성여관 턱밑에 못 박아 걸어둔 전구를 보며(「고강동의 태양」) 자궁을 들어낸 늙은 동네(「오쇠리 나팔꽃」)의 삶을 그려낸 등단 무렵의 작품들에선 비루한 현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시인은 현실과 조금씩 거리를 두며 상처받은 사랑과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를 찾아 나섭니다. 사랑의 성지를 찾아 나선 순례자처럼.

 

      옛집 감샤르가 신기루처럼 떠 있던 시절

      나는 새의 저녁을 훔친 죄로 형틀에 묶여 있었던 것

      고하노니

      나는 저녁에 우는 새와 비린 복숭아 뼈를 가진 장미나무일 뿐

      이 성의 오래된 발작과 고열을 지켜온 건

      병사들 몰래 피어난 처녀들과 순수한 혈통 덕분

      장미의 이름으로 할미는 꽃의 목을 잘라 솥에 던지고

      어미는 초록의 문자들로 불을 피워 즙액을 짰던 것

      고하노니

      한 잔의 피를 홀짝이며 나는 장미의 경전을 넘겼던 것

      처녀들의 이름을 거두며 노래를 불렀던 것

      위대한 꽃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온 몸의 레이스를 깁는 동안 한 생이 흘러갔던 것

      고하노니

      마루메죤의 가마솥은 저녁 새와 할미마저 삼켰던 것

      나는 사막의 붉은 시간에게 몸을 맡겼던 것

      천천히 오아시스의 아침과 복숭아 향 체취를 잊어갔던 것

      장미의 칼날이 쇄골 뼈에 박혀 와도 내겐 더 이상

      신성한 사냥감과 흘릴 피가 모자라 레이스를 벗기면

      마지막 책장을 열고, 끼룩끼룩 뱀 한 마리 울었던 것

      고하노니

      나는 어느새 유혈목이보다

      슬프고 유려한 꽃의 문장을 읊고 있었던 것

               —유미애「장미수 만드는 집」전문

 

   장미수란 장미 꽃잎의 즙을 짜서 만든 증류수. 이 시에서 서정적 자아는 장미나무이며 한 잔의 피를 홀짝이며 노래를 불렀고 위대한 꽃말을 간직한 채 슬프고 유려한 꽃의 문장을 읊는 존재입니다. 감샤르는 장미수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이란의 마을, 마루메죤은 장미 수집에 광적인 집착을 보인 나폴레옹의 조세핀이 머물렀던 궁이랍니다. 복숭아 향의 체취를 지닌 처녀들, 평생토록 레이스를 짜는 여인, 사막의 오래된 성, 병사들, 할미와 어미와 저녁의 새. 가마솥에 장미 꽃잎을 넣고 끓이고 그 즙을 증류시키는 작업 공정, 초록색 몸에 검은 얼룩무늬를 지닌 독사. 전설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한 이 시의 환상성은 장미의 붉은 색감과 복숭아 향의 체취가 시사하는 것처럼 강렬한 관능을 바탕으로 한 심미주의적 작품입니다.

   표제의 시 「손톱」을 비롯해서 장미가 소재로 등장하는 시들은 「장미수 만드는 집」「시인의 사려 깊은 고양이」「장미와 고양이」「고양이 깡통에 얼굴을 묻다」「그리운 늑대」「아드울프」「애너벨의 손톱」등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외에도 꽃과 뱀이 소재로 나오는 시는 훨씬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꽃을 여성으로, 뱀을 남성으로 보는 소박한 프로이드 관점에서 볼 때 사랑의 환상성과 비극적인 사랑의 아름다움은 유미애 시집 전체에 걸쳐 의미 있는 색채를 띤다고 하겠습니다.

 

   단순히 발랄한 개성 하나를 상업적인 전망의 좋은 담보로 보고 출판사에서 첫 시집을 서둘러 낸 경우를 봅니다. 200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페루」라는 작품이 당선된 이제니는 15년 동안 소설만 습작하다가 써낸 시가 운 좋게 당선된 케이스. 이 산문시에 대해서는 애당초 반응이 엇갈렸습니다. 사실 심사위원 둘 중 하나만 다른 시인이었어도 다른 작품이 당선작으로 뽑혔을 겁니다.

   ‘말의 재미를 즐기는’ 듯한 시인의 태도는 이제니 시의 행보 전체에 가장 분명한 암시가 됩니다. 최근 정말 재미있는 시, 혹은 말의 재미를 보여주는 시를 쓴 이들로는 『뽈랑공원』의 함기석 시인, 『마징가 계보학』『소문들』의 권혁웅 시인, 『호텔 타셀의 돼지들』의 오은 시인,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의 서효인 시인 등이 있습니다. 권혁웅 시집 『소문들』에 실린 다음과 같은 시는 쓰는 시인 자신도 즐겁고 재미있게 시를 썼으리라고 상상되며 읽는 독자들 또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충분한 소통이 가능하기에 이런 행복한 장면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1

창피(猖披)란 짐승이 있어, 무안(無顔)과 적면(赤面) 사이의 좁은 골짜기에 산다 야행성이라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간혹 인가에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진다 팔다리가 가늘고 귀가 뒤로 말려서 비루먹은 곰처럼 생겼다 산정(山頂)을 좋아해서 오르다가도 꼬리가 무거워 늘 골짝으로 떨어진다 이 짐승의 가죽을 얻으면 얼간망둥이를 면할 수 있다

 

   2

낭패(狼狽)는 이리의 일종이다 낭은 뒷다리가 짧고 패는 앞다리가 없어서, 길을 가려면 반드시 두 마리가 짝을 이뤄야 한다 전하여 서로의 배필을 찾지 못했을 때를 낭패라 하고, 동성의 짝을 만나 겹으로 쓸모를 잃었을 때를 낭낭패패라 한다 이 짐승을 달여 먹으면 어지자지가 떨어져 한 몸이 둘이 된다

 

   3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말이 있으니 이를 무족마(無足馬)라 한다 인적 끊긴 지 오래인 인가의 굴뚝을 끌어안고 살다가, 성체가 되면 인가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긴 혀로 수염에 붙은 침이나 귓속의 귀지를 핥아 먹는다 한 마리에 천 냥이나 하는 귀한 짐승이어서 특별히 이 짐승 기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자를 말전주꾼이라 부른다

 

   4

암상이라고도 부르는 질투(嫉妬)는 암컷이고, 수컷은 따로 시기(猜忌)라고 부른다 떼를 지어 다니며 사람을 잡아가서는 벼랑 위에서 밀거나 동굴에 가둔다 육질을 연하게 하거나 소금물에 재워두기 위해서다 송곳니와 어금니가 두루 나 있어서 고기를 자르거나 으깰 수 있다 구들직장이 아니고서는 이 짐승의 눈을 도무지 피할 수가 없다

 

   5

외설(猥褻)은 사면발이의 한 종류다 눈이 작고 앞니가 돌출해 있어서 서생(鼠生)을 닮았으나 그보다도 작고 바글바글하다 어느 구멍이든 파고들기를 좋아해서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색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하나를 잡으면 둘이 나타나고 둘을 죽이면 넷이 나타나, 마침내 온 집을 가득 채운다 더러우니 먹어선 안 된다

 

   6

개차반 있는 곳에 파리가 있으나 개중에는 군집을 싫어하는 놈들이 있어서, 이를 청승(靑蠅)이라 한다 볕 잘 드는 곳에서 눅눅한 날개 말리기를 좋아하는데, 그러다 간혹 날개가 바싹 말라서 굶어죽기도 한다 몸 전체가 푸른빛이어서 청백리들이 좋아한다 처마 밑에서 겨울을 나지만 뇟보나 계명워리가 드는 집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 권혁웅 「소문들—짐승」전문

 

   기발한 상상력도 재미있지만 이 시를 읽으며 ‘어지자지, 말전주꾼, 구들직장, 사면발이, 개차반, 뇟보, 계명워리’ 같은 말을 국어사전에서 공부하는 맛도 별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쓰는 사람 자신만 즐겁고 재미있을 뿐 그 시를 읽는 독자는 다만 어리둥절하고 곤혹스럽다면 어떨까요? 말하자면 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로서의 시를 가정해 봅시다. 그건 시인이 일방적으로 시라고 선언하고 독자와의 소통을 막아버린, 대단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요롱이는 말한다. 나는 정말 요롱이가 되고 싶어요. 요롱요롱한 어투로 요롱요롱하게. 단 한번도 내리지 않은 비처럼 비가 내린다. 눈이 내린다고 써도 무방하다. 요롱이는 검은색과 검은색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끊임없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계속해서. 마침표를 잃어버린 슬픔. 양팔을 껴야만 하는 외로움. 그건 단지 요롱요롱한 세상의 요롱요롱한 틈새를 발견한 요롱요롱한 손가락의 요롱요롱한 피로.

          —이제니「요롱이는 말한다」부분

 

   아마도 시인은 이 시를 써놓고 나서 낄낄거리며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당신들 요롱이가 무언지 알겠어? 요롱요롱하다는 게 어떤 건지 알겠어? 아, 고소해라. 이와 같이 혼자 써놓고 혼자 재미있어서 즐기는 시. 여기에는 소통이라는 게 무시되어 있습니다.

   ‘후렴구’라는 것이 어떤 주술적 힘을 발휘하는 목적으로 쓰인다고 하지만 이제니에게 오면 그것은 단지 ‘모호성’의 실현을 위한 것이며 그 자체가 시인 혼자 즐기기 위한 자위도구로 사용될 뿐입니다. 읽고 나서 도무지 내가 무얼 읽었는지 알쏭달쏭하고 몽롱한 가운데 독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건 유명한 시인이 쓴 아주 훌륭한 시야. 이걸 모르는 내가 수치스러운 게야. 아, 나는 너무나 가방끈이 짧아서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게 슬퍼. 또한 시를 공부하는 지망생들이나 정통적인 시를 쓰는 시인들조차 조롱하며 열패감을 심어주는 말도 아닌 시. 시집 속의 시들이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그런 가운데 「무화과나무 열매의 계절」같이 말장난이 아니라 진짜 시가 된 작품도 몇 편 있긴 합니다.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멀리 있는 것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를 때

      나는 슬픈가 나는 위안이 필요한가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아주 조금

 

      호랑이, 그것은 나만의 것

      따뜻하고 보드랍고 발톱이 없는 것

 

      살고 있나요 묻는다면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나는 아주 조금 살고 있어요

 

      내 머릿속은

      반은 쑥색이고 반은 곤색이다

      쑥색과 곤색의 접합점은 성홍열 같은 선홍색

 

      열두살 이후로 농담이 입에 배었다

      옷에도 머리카락에도 손톱 끝에도

      주황색 양파자루 속엔 어제의 열매들

      양파가 익어가는 속도로 너는 울었지

 

      눈을 감아도 선홍색이 보이면

      다시 코끼리 사자 기린 얼룩말 호랑이

      너무나 멀리 있지만 아마도 아프리카

      나는 하룻밤 사이에도 많은 곳을 돌아다닌다

                —이제니「아마도 아프리카」전문

 

   시집 속에서 비교적 시의 꼴을 그나마 제대로 갖춘 작품 중의 하나가 될 이 시는 시집의 표제작입니다. 이 시에서 눈살 찌푸려지게 드러나는 두 가지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수줍어서 말끝을 흐려버린, 아니면 지능이 낮아 말의 중동을 잘라버린 듯한 말투는 어쩔 수 없는 비문(非文)입니다. “나는 슬픈가 나는 위안이 필요한가/ 아마도 아프리카 아마도 조금” 이것을 시적 허용이라거나 시의 함축적 표현이라고 하기엔 너무 염치없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말에 대한 시인으로서의 기본 예의의 결여입니다. ‘곤색’이라는 말은 ‘감색, 진남색’으로 대체해야 할 일본말 찌꺼기입니다. 요즘 대중가요에는 마구잡이로 반토막의 영어를 겉멋으로 삽입한 가사를 적지 아니 볼 수 있습니다. 일본말, 토막 영어 따위를 무분별하게 시에 쓰는 것을 앞서가는 우리말의 다문화 수용으로 보아야 하겠습니까?

   “화가는 색을, 음악가는 음을, 시인은 언어를 가지고 노는 것이죠. 그럴 때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어떤 평론가는 이제니의 천진성을 시인으로서의 최고의 미덕인 양 추켜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천진하기 때문에 이상야릇한 말들을 만들어서 통통 튕기며 가지고 노는 것인지. 아움, 자퐁, 뵈뵈, 홀리, 밋딤, 라이라, 요롱…… (‘자퐁’은 일본Japan에 대한 프랑스식 발음이라고 하는데, 글쎄요) 등의 해괴한 말과 소리와 비문들을 뒤범벅으로 반죽해서 만든 시를, 괴상한 말들을 도저히 시인의 우리말 사랑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는 '유희적인 말놀이, 무의미한 언술의 나열' 의 집합체입니다. 말장난, 시인 혼자 즐기는 말놀이, 텅 빈 언어의 껍질로 노는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습니다. 행여 이제 시를 쓰고자 하는 젊은 지망생들에게 이 시집 속의 시편들이 저만큼 앞서가는 훌륭한 시인 양 잘못 인식될까 적잖이 걱정스럽습니다.

 

 

           —《詩로 여는 세상》2011년 봄호

출처 : 함께하는 시인들 The Poet`s Garden
글쓴이 : 심우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