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눈사람 여관」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그러면 날마다 아침이에요
밥은 더러운 것인가
맛있는 것인가 생각이 흔들릴 때마다
숙박을 가요
내게 파고든 수북한 말 하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모든 계약들을 들여놓고
여관에서 만나요
탑을 돌고 싶을 때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내가 껴안지 않으면 당신은 사라지지요
길 건너편 숲조차도 사라지지요
등 맞대고 그물을 당기면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여관이겠어요
내 당신이 그런 것처럼
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
여관 앞에서
목격이라는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거지요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거짓을 생략하고
이별의 실패를 보러
나흘이면 되겠네요
영원을 압축하기에는
저 연한 달이 독식을 그만두기에는
▶ 시_ 이병률 (1967~ )은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바람의 사생활』 등이 있다.
▶ 낭송_ 전영관 – 시인. 시집으로 『바람의 전입신고』, 산문집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 등이 있다.
배달하며
여관은 가난한 여행자들이 하룻밤을 묵어가는 곳. 모든 여관들은 집과 집 사이에 있지요. ‘사이’의 장소들은 정처없이 떠도는 존재들이 숙박을 하는 곳이지요. ‘여관’하고 발음해 보세요. 입술로 새나오는 소리가 한밤중에 내리는 눈처럼 고적하고 쓸쓸하게 고막에 쌓이지요. 이 세상 어딘가에는 눈사람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여관도 있네요. 정말 그런 여관이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지요? 아하! “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이라네요. 눈사람 애인과 여관에 함께 들 때 다정도 실패도 끌어안고 잊기엔 나흘이면 족하겠지요. 나흘이면 “이별의 실패”도 완성하고 “영원을 압축”할 수도 있겠지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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