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빠른 KTX 안에서- 김사인 형께/김용락

김욱진 2017. 2. 4. 15:52

       빠른 KTX 안에서- 김사인 형께

       김용락

 

1919분 동대구발 행신행 KTX를 타고

대전성모병원 특3실 김사인 시인 부친상 문상 가면서

그저 받은 그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를 읽는데

첫 시부터 좋구나 소리 연방 나오더니

중과부적에 와 이를 세 개나 빼야하는

딸아이의 성 내는 구절을 읽다가

참 좋은 시인! 이라는 신음이

마침 치과 치료중인 내 어금니 사이에서

상갓집 흐릿한 조등 불빛같이 기어코 흘러나오고 말았다

20대 중반부터 시를 쓰면서

뻔질나게 서울 나들이할 때

자정이 가까워지면 서울 놈들 하나같이

장마 끝 잘 여문 봉숭아 씨방 내용물처럼

탁 터져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면

어리버리 지방 촌놈들 닭 쫓던 개 꼬락서니라

많이 당황하고 슬펐는데

그때 촌놈들 서울 어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낡은 아파트에 이끌어다 놓고

자신은 옆방에서 급한 원고 메운다고

밤새 타닥타닥 수동타자기 두들기던

선한 얼굴의 30대 초반 그 김사인이 생각난다

나도 이런 좋은 시 딱 한 편 쓰고 싶은데

나에게는 그런 복이 없는 것 같다

내일모레 60인 걸 생각하면

안달이 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 내 詩心을 조문해야 하나

차창에 비친 내 야윈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그새 목적지 대전역에 내리라고... (2015. 2. 16)

 

- 시집 산수유나무(문예미학사, 2016)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뉴스/류인서  (0) 2017.02.06
자본론/ 백무산  (0) 2017.02.04
시를 읽는다/박완서  (0) 2017.02.04
항아리 / 노원숙  (0) 2017.01.22
바람이 남기고 간 자리/노원숙  (0) 2017.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