呪文
오탁번
소백산 아랫마을에서 萬物商을 하는 젊은 시인이 꿈 이야기를 했다. 깊은 가을 날 문득 찾아온 그를 데리고 산척면 손두부집에서 점심으로 비지찌개를 먹고 천등산 다릿재를 넘어 올 때였다
-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를 하는데 집이 온통 다 하얀 빛이 예요 지붕도 벽도 방도 창문도 다 하얗게 칠해진 집으로 들어가니까 하얀 침대에는 고운 황토가 깔려있는 거예요 다음 날 아무래도 찜찜해서 사주나 잘 보고 해몽 잘하는 점쟁이를 찾아 갔더니 일언지하에 "죽을 꿈이다, 이년아!" 하지 않겠어요? 액땜 符籍을 해야 된데요
황토가 깔려있는 하얀 침대라니? 바로 棺이 아닌가! 회다짐한 무덤 속 아닌가! 불타는 단풍에 몸을 데일 것 같은 다릿재를 2단 기어 놓고 내려오면서 차창을 열고 는 퉤! 퉤! 퉤! 침을 세 번 뱉었다 불길한 것을 물리치기위한 交感呪術의 첫 呪文이다 하느님과 통화하는 내 고유의 發信音이다
- 하느님! 이 사람을 앞으로 딱 50년만 우리은하 태양계 세 번째 행성의 주민으로 눌러 살게 해주십쇼 소백산산신령님! 앞으로 이 사람이 대선 총선 투표도 꼭꼭 할테니 선거인명부에서 이름을 지우지 마십쇼 잡귀들아 썩 물렀거라! 바늘귀만한 시간도 바늘밥만한 사랑도 아끼는 이 사람한테 얼씬도 하지 마라!
내 呪文이 직방으로 통했다는 텔레파시가 다릿재를 다 내려오기도 전에 왔다 氣를 많이 써서 내 수명이 좀 줄어들지도 모르지만 까짓 괜찮다 죽을 꿈을 꾸었던 젊은 시인은 눈 깜작 할 사이에 내가 하느님과 긴급통화하여 제 목숨을 구한 줄은 땅띔도 못하고 萬物商에서 일어나는 참 萬物 같은 세상 이야기를 또 종알종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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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시 "呪文"은 기가 막히는 시 입니다. 하나님과 긴급통화하는 경지에 오른 노 시인과 만물박사인체 하는 젊은 시인의 대화 내용 입니다. 당연히 소통 불통일 수 밖에 없지요^^
이 시를 “오탁번식으로” 해석하면 “좆(순수)도 모르는 게” 얻어 들은 것은 많아서 진짜 도사 앞에서 시문을 아는 체 종알종알 한다는 풍자입니다. 가짜 점쟁이 말은 천금같이 여기고 부적까지 사면서 하느님과 직통으로 긴급통화하여 제 목숨을 구해준 진짜 도사는 몰라보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얻어들은 것은 많아서 조선 것 다 아는 양 만물상 같은 이야기를 숨도 쉬지 않고 또 종알종알 거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 문학만 그러합니까? 우리 삶의 구석구석이 그러한 것을.
우리는 왜 늘 그 모양 그 꼴로 그렇게 살아갑니까?
시인은 남을 위하는 일에는 바늘귀만한 시간도 바늘밥만한 사랑도 아끼는 우리의 이기심 탓이라고 합니다. 한방에 도가 터지는 기술이 없을까하는 우리의 욕심 탓이라고 합니다. 시인은 이런 가짜 도사들의 邪術로 부터 우리생명을 지키는 길은 두 번 다시는 그런 곳에 가지 않겠다며 아득한 원시시절부터 우리 조상님들이 그리 해왔던 것처럼 “퉤 퉤 퉤 삼세번 침을 뱉는” “呪文”을 그 대책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남의 탓이 아니라 邪惡한 것들로부터 단호히 결별하겠다는 당신의 결심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시를 읽다보면 김삿갓이 오버랩됩니다.
전국을 떠돌던 김병연이 거지꼴로 황해도 어느 서당을 찾았는데 글을 배운 훈장이 사람의 겉모양만 보고 무시하며 개 코도 못되는 게 “갑질”까지 하는지라 그 자리에서 아래의 시를 써서 훈장의 방에 던져 주고 나옵니다.
書堂(서당)은 乃早知(내조지)요 / 내가 이미 왔음을 서당에 알렸는데
房中(방중)은 皆尊物 (개존물)이다/ 방안에선 모두 제 잘난 척 만 한다
生徒(생도)는 諸未十(제미십)이고 / 생도는 채 열 명도 안 되면서
先生(선생)은 來不謁(내불알)이다 / 선생이란 사람이 내다보지도 않는구나!
시문을 아는 사람답게 욕도 품격 있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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