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수상작

19회 수주문학상 수상작-누에/장유정

김욱진 2017. 9. 11. 11:28

                 누에

                 장유정


    수백 년 전 누에의 분묘가 발굴되었다
      모서리죽임 같이 흙으로 쌓아올린 사각기둥
      실을 짓던 시간들이 뭉쳐있었다
      무한한 옷 한 벌 품은 실들이 껍질 속에 있었다
      집을 바라는 열의의 모형처럼 타임캡슐엔
      우주에 관련한 보고서도 발견되었다

      집 한 채 따로 들고 나앉듯
      방안에는 숨을 뽑아 날개를 만들고 있었다
      좁은 침낭 속에 들어 잠을 자는 듯 죽어있는 누에고치

      자기만의 중심축으로
      한곳에 치우침 없이
      부드러운 곡선 속에 계속 굴러가는 방향지시등처럼
      마찰계수가 작았을 것이다
      뾰족한 끝이 보이고
      자꾸만 균형 잃고 흔들릴 때
      세상과 닿는 유연한 포장
      쉼 없이 돌고 도는 지구의 자전처럼 모서리가 둥글다

      잠자는 머리를 어느 쪽으로 돌리지 않은 것들은
      화려한 변태를 겪을 수 있다는 듯

      미사일저장고를 개조하듯
      우주선 캡슐에 건전지 넣는다
      긴급 피난형 집처럼 누에가 고치를 짓고 있다
      우화등선처럼 손끝에는
      하얀 벌레가 한 마리씩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