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장유정
수백 년 전 누에의 분묘가 발굴되었다
모서리죽임 같이 흙으로 쌓아올린 사각기둥
실을 짓던 시간들이 뭉쳐있었다
무한한 옷 한 벌 품은 실들이 껍질 속에 있었다
집을 바라는 열의의 모형처럼 타임캡슐엔
우주에 관련한 보고서도 발견되었다
집 한 채 따로 들고 나앉듯
방안에는 숨을 뽑아 날개를 만들고 있었다
좁은 침낭 속에 들어 잠을 자는 듯 죽어있는 누에고치
자기만의 중심축으로
한곳에 치우침 없이
부드러운 곡선 속에 계속 굴러가는 방향지시등처럼
마찰계수가 작았을 것이다
뾰족한 끝이 보이고
자꾸만 균형 잃고 흔들릴 때
세상과 닿는 유연한 포장
쉼 없이 돌고 도는 지구의 자전처럼 모서리가 둥글다
잠자는 머리를 어느 쪽으로 돌리지 않은 것들은
화려한 변태를 겪을 수 있다는 듯
미사일저장고를 개조하듯
우주선 캡슐에 건전지 넣는다
긴급 피난형 집처럼 누에가 고치를 짓고 있다
우화등선처럼 손끝에는
하얀 벌레가 한 마리씩 꿈틀거렸다
'♧...신춘문예,수상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7회미당문학상-무궁무진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옹/박상순 (0) | 2017.09.24 |
---|---|
2017천강문학상 동시 당선작-흔들의자 외 2편/임창아 (0) | 2017.09.21 |
시계/김남조-2017년 29회 정지용 문학상 (0) | 2017.04.24 |
봄밤/권혁웅-2012 미당문학상 수상작 (0) | 2017.04.09 |
[스크랩] 2017년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시부문) (0) | 2017.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