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서럽더라 1
이성복
그날 밤 동산병원 응급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헐떡거리던 청년의
내려진 팬티에서 검은 고추, 물건, 성기!
이십 분쯤 지나서 그는 숨을 거뒀다
그리고 삼십 년이 지난 오늘 밤에도
그의 검은 고추는 아직 내 생 속을 후벼 판다
못다 찌른 하늘과 지독히 매운 성욕과 함께
죽지랑을 그리는 노래
그 봄 청도 헐티재 넘어
추어탕 먹으러 갔다가,
차마 아까운 듯이
그가 보여준 지슬못,
그를 닮은 못
멀리서 내젓는
손사래처럼,
멀리서 뒤채는
기저귀처럼
찰바닥거리며 옹알이하던 물결,
반여, 뒷개, 뒷모도
그 뜻 없고 서러운 길 위의
윷말처럼,
비린내 하나 없던 물결,
그 하얀 물나비의 비늘, 비늘들
내가 밥 먹으러 다니는
강가 부산집 뒤안에
한참을 늘어지게 자던 개,
다가오는 내 발자국 소리에
깨어나, 먼 데를
보다가 다시 잠든다
그 흐릿한 눈으로
나도 바라본다,
어떤 정신 나간 깨달음처럼
허옇게 펼쳐진
강 건너 비닐하우스를
—시집『래여애반다라』에서
'♧...참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 속에 사막/문인수 (0) | 2017.10.01 |
---|---|
두레반/오탁번 (0) | 2017.09.29 |
서른 잔치는 끝났다 외 7편/최영미 (0) | 2017.09.10 |
인연(人戀)/박지웅 (0) | 2017.09.09 |
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박지웅 (0) | 2017.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