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오다, 서럽더라 외 2편/이성복

김욱진 2017. 9. 20. 07:56

       오다, 서럽더라 1

         이성복 

  

그날 밤 동산병원 응급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달고 헐떡거리던 청년의

내려진 팬티에서 검은 고추, 물건, 성기!

이십 분쯤 지나서 그는 숨을 거뒀다

그리고 삼십 년이 지난 오늘 밤에도

그의 검은 고추는 아직 내 생 속을 후벼 판다

못다 찌른 하늘과 지독히 매운 성욕과 함께  


 

죽지랑을 그리는 노래 

 

그 봄 청도 헐티재 넘어

추어탕 먹으러 갔다가,

차마 아까운 듯이

그가 보여준 지슬못,

그를 닮은 못 


멀리서 내젓는

손사래처럼,

멀리서 뒤채는

기저귀처럼

찰바닥거리며 옹알이하던 물결,


반여, 뒷개, 뒷모도

그 뜻 없고 서러운 길 위의

윷말처럼,

비린내 하나 없던 물결,

그 하얀 물나비의 비늘, 비늘들 


        강가 

 

내가 밥 먹으러 다니는

강가 부산집 뒤안에

한참을 늘어지게 자던 개,


다가오는 내 발자국 소리에

깨어나, 먼 데를

보다가 다시 잠든다   


그 흐릿한 눈으로

나도 바라본다,   


어떤 정신 나간 깨달음처럼

허옇게 펼쳐진

강 건너 비닐하우스를 


—시집『래여애반다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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