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겠다, 마량에 가면
이재무
몰래 숨겨놓은 여인 데불고
소문조차 아득한 먼 포구에 가서
한 석 달 소꿉장난 같은 살림이나 살다 왔으면,
한나절만 돌아도 동네 안팎
구구절절 훤한, 누이의 손거울 같은 마을
마량에 와서 빈둥빈둥 세월의 봉놋방에나 누워
발가락장단에 철 지난 유행가나 부르며
사투리가 구수한, 갯벌 같은 여자와
옆구리에 간지럼이나 실컷 태우다 왔으면,
사람들의 눈총이야 내 알 바 아니고
조석으로 부두에 나가
낚싯대는 시늉으로나 던져두고
옥빛 바닷물에 텃밭 떠난 배추 같은 생 절이고
절이다가 그것도 그만 신물이 나면
통통배얻어 타고 먼 바다 휭, 하니 돌다 왔으면,
그렇게 감쪽같이 비밀 주머니 하나를 꿰차고 와서
시치미 뚝 떼고 앉아
남은 뜻도 모르는 웃음 실실 흘리며
알량한 여생 거덜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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