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온돌방/조향미

김욱진 2011. 1. 31. 08:31

         온돌방               

                 조향미


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작은방 구석에는 수수대로 엮어놓은 곳에 고구마 가득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아, 그 온돌방에서
세월을 잊고 익어가던 메주가 되었으면                              
한 세상 취케 만들 독한 밀주가 되었으면
아니 아니 그보다
품어주고 키워주고 익혀주지 않는 것 없던
향긋하고 달금하고 쿰쿰하고 뜨겁던 온돌방이었으면

 

 

 

 

 

사려서 더 따뜻한 설날 되시기를


이제 며칠 있으면 설 연휴가 시작합니다. 일제시대와 해방 후 한 동안 이중과세(二重過歲) 논란 속에서 핍박받았지만, 우리 모두가 지켜낸 민족의 명절입니다. 어제까지 매서운 날씨가 누그러지지만 설날과 이튿날에는 중부지방과 일부 남부지방에 서설(瑞雪)이 온다는 기상청의 예보입니다.
설날은 ‘몇 살’할 때의 ‘나이’, ‘낯설다’ 할 때의 ‘새로움’에서 왔다고도 하고, ‘지붕유설’을 지은 조선 선비 이수광은 ‘서럽다’가 어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육당 최남선이 말한 대로 '삼가다' '조심하다'는 뜻의  ‘사리다’에서 왔다는 설(說)이 제게는 가장 와닿습니다. 예부터 설을 신일(愼日)이라고 불렀다는데, 이때 ‘신’이 곧 ‘사리다’의 뜻을 갖고 있지요. 군자는 혼자 있을 때 마땅히 사려야 한다(愼獨)는 유가 고전 ‘대학(大學)’의 글귀가 생각나는군요.

설 첫날 매사에 사려서 훈훈하고 즐거운 명절 되기를 빕니다. 오랜 만에 만나는 친척, 친구에게 행여 상처가 될지 모르는 말 삼가시고, 술 조심하시고, 운전 조심하시고 매사에 신중하고 그래서 따뜻한 설날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