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외 1편
박남희
날씨가 추워져서 옷을 여러 겹 껴입었다
맨 안의 옷을 가린 옷을 또 가리고
그 옷을 또 가린 옷이 외투라는 이름으로 걸어간다
외투 속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옷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함께 어디론가 간다
너무 많은 옷을 껴입은 외투는 쉽게 낡는다
그러고 보니 멀리 산도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 안에 무수한 옷들이 겹쳐져서
산이 되었다 산은 어디론가 가면서 산맥을 이룬다
우리 집의 명물인 비키니 옷장이라는 것도 그렇다
가장의 외투 한 벌 속에 무수한 옷들이 겹쳐져 있다
추위가 풀리면 외투 속의 옷들은 저마다의 색을 드러낼 것이다
봄이 되어 꽃이 피는 것도
외투 속에 숨어있던 옷들이 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봄꽃들을 자세히 보면
그 속에 겹쳐졌던 옷들의 그림자가 보인다
구름으로 말하는 법
비가 올 때 천둥 번개가 치는 것은
하늘에서 누군가 구름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니?
하늘이 말없이 눈물 흘리다가 북받쳐 올 때
탄식소리처럼 터져 나오는 말,
그 말은 구름의 말처럼 보이지만 사실
누군가 구름으로 말하는 것일 뿐이야
구름은 말이 쌓여서 된 것이라서
구름만의 방언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그 방언은 비유로 되어있어서
아무나 그 방언을 사용하지는 못하지
이 땅에서 구름의 방언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제 안에 구름의 허기를 가지고 있는 것들뿐이야
아무리 먹고 먹어도 배가 고픈 구름은
달콤한 팝콘이나 솜사탕의 계보를 가지고 있는지도 몰라
넌 구름에 중독된 사람을 본적이 있니?
한 순간 뭉게뭉게 피어나 하늘에 온갖 형상을 만들다가
한 순간 비가 되어 내리는 구름의 속성을 닮은
구름의 몽상가를 본적이 있니?
구름으로 꿈을 꾸다가 끝내 구름 때문에 배가 고픈
노숙자를 본적이 있니?
그들이 노숙을 즐기는 것은 구름이 식량이고 이불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
그런데, 바람아 넌
구름으로 말하는 법을 아니?
- 『열린시학』2011.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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