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은하통신_에스컬레이터에서 / 김사인

김욱진 2026. 1. 26. 11:35

은하통신

_에스컬레이터에서

김사인



이렇게 살아졌군요 나도 그대도
어디에서 어긋났던 걸까요
아득한 은하
이 별로 흘러와
질척이는 뒷골목 악몽처럼
삼십년
사십년
아니, 오십년을!
-당신은 또 어느 별에서 오신 분일까요
사열식의 우로봐 시간 같은 낯선 고요 속에서 생각해요.
살찐 그대의 낡은 외투 끝과 바깥이 닳은 구두굽을
살찐 내가 아프게 보네요.
무엇이 우리를 데려와 이렇게 볼품없이 풍선 부는 걸까요.
불다 팽개쳐 쭈그러뜨리는 걸까요.
-당신은 그 별에서 어떤 소년이셨나요
또다른 당신이 내 뒤에서 소리 없이 묻네요.
전에 어디서 우리가 만났던가요.
우리를 싣고 오르는 이 기계도 말 못하는 외로운 짐승이구요.
잠시후 지상에 닿으면 또 바삐 흩어지겠지요.
질척거리는 뒷골목으로 돌아가
침 묻혀 지폐를 세는 아버지이겠지요.
허겁지겁 국밥을 넘기는 늙은 아버지이겠지요.
기억 못하겠지요 그대도 나도
함께한 이 낯설고 짧은 시간을.
두고 온 별들도 우리를 기억 못할 거예요.
돌아갈 차표는 구할 수 있을까요 이 둔해진 몸으로.
부연 하늘 너머 기다릴 어느 별의 시간이 나는 무서워요.
어떤가요 당신은.

_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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