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산/이형기

김욱진 2011. 4. 13. 19:42

        

                                          이형기

 

 

산은 조용히 비에 젖고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내리는 가을비

가을비 속에 진좌한 무게를

그 누구도 가늠하지 못한다.

표정은 뿌연 시야에 가리우고

다만 윤곽만을 드러낸 산

천 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이

오후 한때 가을비에 젖는다.

이 심연 같은 적막에 싸여

조는 둥 마는 둥

아마도 반쯤 눈을 감고

방심무한 비에 젖는 산

그 옛날의 격노의 기억은 간 데 없다.

깎아지른 절벽도 앙상한 바위도

오직 한 가닥

완만한 곡선에 눌려 버린 채

어쩌면 눈물 어린 눈으로 보듯

가을비 속에 어룽진 윤곽

아 아 그러나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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