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처럼 창녕문협 출향문인 회원
내 고향 창녕
노 중 석ㆍ시인
내가 태어난 곳은 경남 창녕군 대지면 석리(석동)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동쪽을 바라보면 해와 달을 토해내는 화왕산이 우뚝 솟아 있고 서쪽에 는 수많은 수중 생물들을 기르고 온갖 새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주는 우포늪이 나직이 엎드려 있다. 마을 앞에는 어머리들이라는 기름지고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들판 한쪽 모서리를 적시며 토평천이 지줄대며 흘러가고 있다.
이곳에는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하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고분군과 출토되는 유물들로 미루어 볼 때 삼국시대 초기에는 비화가야의 영역이었다. 신라의 세력이 확장됨에 따라 진흥왕이 척경비를 세운 6세기 중엽부터 이곳은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그 후 신라의 군사 요충지로 당시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경남의 경주 혹은 소경주라 불리운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향에서 살았는데 내 어릴 적 소박한 꿈을 키워준 것은 고향의 따뜻한 햇살과 맑은 바람 그리고 이웃들의 훈훈한 인정이었다고 생하고 있다. 따뜻한 봄햇살은 화왕산의 진달래꽃을 지천으로 피어나게 하고 그 꽃향기를 토평천에 실어 우포늪으로 보낸다. 우포늪은 비로소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가래, 생이가래, 마름, 부들 등 수초들을 불러내고 가시연꽃의 맷방석만 한 잎을 펼치기 시작한다.
우포늪은 1962년 ‘창녕 백조 도래지’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1973년 찾아드는 백조의 수가 감소한 것을 이유로 천연기념물에서 해지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금년에 문화재청은 창녕 우포늪 천연보호구역을 천연기념물로 다시 지정하였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왜군올 물리치던 그 기상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화왕산은 그 푸른 자락으로 도삼절이라는 조그마한 암자 하나를 품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그곳에 소풍을 가서 땀을 식히며 점심을 먹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점심을 먹고 모여앉아 함께 부르던 노래 한 소절쯤은 아직도 산골짝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만 같다.
내 추억의 배경일 뿐만 아니라 그리움의 대상인 창녕의 아름다운 산천은 내게는 이 세상 어떤 명승지보다 아름다운 곳이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멸종상태인 따오기를 복원하기 위하여 이곳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몇 년 후면 고향에 가서 따오기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胡馬는 언제나 북쪽 바람을 향해 서고 越나라에서 온 새는 나무에 앉아도 남쪽을 향한 가지를 골라 앉는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고 했던가. 오늘도 먼 남쪽 하늘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노중석 시인의 글이 실린 경남문학관 리뷰(2011, 상반기 39호)
<시인 소개>
* 노중석, 호 심연(心然)
* 창녕 출생
* 제2회 민족시 백일장 장원(1977)
*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1978)
* 서울신문의 신춘문예 당선(1983)으로 문단에 등단, 오류동인으로 활동
* 한국서예가협회 이사, 심사위원 역임. 태현서실(太玄書室)을 개설. 개인전, 교류전, 초대전 등 50여차례에 걸쳐 작품전을 가짐.
* 김천문협 회장(현), 한국서예협회 상임 부이사장 겸 학술·국제분과 위원장, 각종 서예대전 심사위원 역임.
* 1973년부터 김천시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2009. 2월 교단에서 정년퇴직
* ‘숲’ ‘먼길’ ‘바람도 아득한 밤도’ 등 10권의 동인지와 ‘비사벌 시초’ ‘하늘다람쥐’ 등 한 권의 시조선집과 두 권의 시집을 펴냈고
* 금복문화상(1993), 효원문화상, 경북도 서예 초대작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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