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사계

어른이 되고 싶었지

김욱진 2010. 5. 21. 21:28

       어른이 되고 싶었지

 

 

 

 

소꼴 베러 뒷골 가

도랑가재 잡아 구워먹고

허수아비 속 태우며

콩서리하다 그만

밭주인에게 붙잡혀

혼이 나던 어린 녀석

옥수수 대궁처럼 성큼 자라

누군가에게 베풀며 사는

어른이 되고 싶었지

 

수염만 길게 기르면

될 거라 생각하고

몇 날 며칠

할머니 머리맡에 빠진

흰 머리칼 주워 모아

몰래 턱 언저리 붙이고

해질 녘

밀짚모자 푹 눌러쓴 채

골목길 나섰지

 

턱수염 간질이며

웃어대던 갈바람

‘현촌 영감 어디 가냐’ 며

내 옷깃 스치고 지나갔지

손자 찾아 나선

할멈처럼,

때론 누군가에게

너그럽게 속아주며 사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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