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면 가끔 놀이터에 나와 놀다 가는 가족이 있다
문인수
저 먼 산 윤곽이
해 지고 나서 더욱 뚜렷하게 불거진다.
산의 어둑살은 그러니까
한 끼 저녁밥이거나
거구가 망라된 힘찬 맨손체조 같은 것일까
시꺼멓게 저문 산능선의 거친 굴곡이
지금 가장 강건하게 느껴진다.
어떤 결심이 굳건하게 일어서는 장면이겠다. 저렇듯
큰 절망이 이제
더 이상 무너지지 않는 바닥일 테지만 그러나
생이 참 얼마나 확실하게
구석구석 새삼 만져지겠는지
풀들 나무들 새소리들
또 한 번 잘 품어보는 저녁 산.
저 먼 산 바라보면
망자가 와서 또 가슴에 묻히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사내의 커다란 어깨며 등줄기가
골목 어귀를 꽉 채우며 왈칵, 깜깜하다.
여자 아이 둘 까불대며 따라 붙는 것하고
산 너머 조막손이 별 반짝이는 것하고
아, 똑 같다. 어둠이 심어
가꾸는 길이 똑 같다.
(현대시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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