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꺼리

올곧은 길 묻다/우보 류시중교수님께

김욱진 2014. 6. 18. 07:07

 

추모의 글

                올곧은 길 묻다

                            우보 류시중 교수님께

 

  선생님, 작년 6월 중순, 저희 부부와 이곳 산소에 와서 쑥도 뜯고 잔디밭에 둘러앉아 사모님 노래도 즐겁게 듣던 기억나시지요. 그날 선생님께서는 우주여행 떠나실 채비를 하셨습니다. 선조들의 묘소 앞에 일일이 엎드려 마지막 인사를 고하셨습니다. ‘나 돌아가거든 선친 묘소 옆에 천주교식으로 나지막이 봉군 쌓고 조그만 돌에다 이름 석 자나 새겨주게.’ 그러셨지요. 그리고 시간 나거든 공원이라 생각하고 가끔 들려주게.’ 하셨습니다.

  두 달 후 선생님 떠나셨습니다. 제 마음 한 구석엔 지난 32년간 선생님과 얽힌 인연 덩굴 번지고 번져 하루에도 몇 번씩 뭉클뭉클해옵니다. 대학입학해서 선생님 처음 뵈었던 날, 제게 어린 시절 얘기를 해주셨지요. 아버지를 중1 때 여의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공부하셨다고요. 놀랍게도 그 당시 저의 가정환경과 흡사했습니다. 그 핑계로 저는 선생님 연구실에 자주 드나들며 자장면도 많이 축냈지요. 어느 여름, 신동 고모할머님 댁까지 따라가 하룻밤 지내고 온 일, 선생님 논문 마무리작업 도와드린다며 동해안 따라가 해수욕하던 일, 문종이에 손수 쓰신 연하장 해마다 보내주시던 일, 제 결혼 주례 서주신다고 일본에서 며칠을 앞당겨 귀국하신 일, 저의 흙집에서 사흘 밤 묵으시며 동그랗게 오린 박스종이 뒷면에다 붓글씨로 반야심경 사경해서 건네주시던 일, 갑작스런 저의 교통사고로 한밤중에 대학병원 응급실 달려오셨던 일 등등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사제지간을 넘어 한 달이 멀다않으시고 안부전화 해주시던 선생님, 언제 어디서나 아버님처럼 따뜻이 대해주시던 선생님, 지금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

  영면하시는 날까지 선생님께서는 올곧게 사는 길 제게 일러주셨습니다. 우주여행 떠나시기 일주일 전, 눈 겨우 뜨시고 ‘그 동안 자네 내외 고마웠다.’며 눈시울 적시셨습니다. 그날은 눈물이 앞을 가려 아무 말씀 한 마디 못 드린 채, 미리 써간 편지 한 장만 선생님 손에 꼭 쥐어드리고 돌아왔습니다.

  선생님 서거 1주기를 맞아, 오늘 이렇게 선생님 산소 앞에서 그 편지를 읽습니다. 지금 이 순간 들려오는 선생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우주에는 수많은 정거장이 있습니다. 지구는 그중의 한 정거장일 뿐입니다. 삿된 유혹들이 들끓는 사바 세상에 오셔서 올곧게 사는 법 익히시느라 얼마나 고되셨습니까? 선생님 평소 생활 모습은 어느 종교 어떤 철학보다도 값진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셨습니다. 지구에서 익히신 習 하나하나 조용히 내려놓으시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또 누구인가?'를 쉼 없이 찾고 계시던 선생님.

  오랜만에 혼자서 홀가분히 떠나시는 우주여행 길이라 이곳에서 길들여진 미운 정 고운 정이 한 동안 눈에 밟히시겠지만, 그 또한 이 다음 어느 역에서 만날 인연의 씨를 뿌려두신 소중한 일이셨습니다. 지구별 한 모퉁이서 닿은 선생님과의 귀한 인연 세세생생 두고두고 간직하겠습니다. 이곳과 저곳 오가는 길을 두고 옛 큰스님들은 그저 옷 한번 갈아입는 일이라 하셨습니다. 선생님 마음자리도 그러하십니다. 선생님께서는 이곳저곳 따로 없는 우주법계 이치를 이곳 떠나시는 순간까지도 묻고 또 물으셨습니다. 생로병사의 苦가 없는 세상으로 가는 법을 몸소 익히셨습니다. 선생님, 부디 여법한 마음으로 우주여행 평안히 잘 다녀오십시오. 이곳에 다시 오셔서 우매한 영혼들을 일깨워 주십시오. 우주 어디선가 선생님 뵙는 그날까지 저도 부단히 마음공부하며 갈고 닦겠습니다.

 

                                    2013년 8월 15일

                                    제자 김욱진 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