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시인 특강
형상시 문학, 봄과 함께 문학을 만나다
a. 왜 쓰는가에 대한 문제.
-글쓰기의 본질은 잘 우는 자, 즉 울음이 울림이 되는 자에게 있다.
大凡物不得其平則鳴. 草木之無聲, 風搖之鳴, 水之無聲, 風蕩之鳴.
만물은 평정(平靜)을 얻지 못하면 소리 내 운다. 초목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소리 내 울고, 물은 본디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치면 소리 내 운다.
其躍也或激之, 其趨也或梗之, 其沸也或炙之.
솟구치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을 쳤기 때문이고, 내달리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며, 끓어오르는 것은 무언가가 그것에 불질을 했기 때문이다.
金石之無聲, 或擊之鳴. 人之於言也亦然,
금석은 본디 소리가 없지만 두들기면 소리 내 운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有不得已者而後言. 其歌也有思, 其哭也有懷.
도무지 어쩔 수 없어서 말을 하는 것이니, 노래하는 것은 생각이 있어서고, 우는 것은 가 슴에 품은 바가 있어서다.
凡出乎口而爲聲者, 其皆有弗平者乎!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들은 모두 평정치 못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樂也者, 鬱於中而泄於外者也, 擇其善鳴者而假之鳴, 金石絲竹匏土革木八者, 物之善鳴者也.
음악이란 안에 가득 막혀 있던 것이 밖으로 터져 나온 것인데. 소리 내 잘 우는 것을 택하여 대신 울게 했으니, 종과 경, 거문고와 피리, 그리고 생황과 질장구, 북과 축, 이렇게 여덟가지가 만물 가운데 소리 내 잘 우는 것들이다.
維天之於時也亦然, 擇其善鳴者而假之鳴. 是故, 以鳥鳴春, 以雷鳴夏, 以蟲鳴秋, 以風鳴冬.
하늘이 계절을 운행한 때도 마찬가지로 소리 내 잘 우는 것들을 택하여 대신 울게 했으니 새가 소리 내 봄을 울고, 우레가 소리 내 여름을 울고, 벌레가 소리 내 가을을 울고, 바람이 소리 내 겨울을 울게 되었다.
四時之相推奪, 其必有不得其平者乎!
그러니 사계절이 서로 번갈아 찾아오는 것도 평정을 얻지 못한 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其於人也亦然. 人聲之精者爲言, 文辭之於言, 又其精者也.
이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내는 소리 중 가장 정묘(精妙)한 것이 언어이며, 문장의 표현은 언어 가운데에서도 더욱 정묘한 것이다.
-<송맹동야서, 한유> 한유 문집/ 문학과 지성사.
b. 비유에 대한 질문
대담한 치마 / 변희수
우리 할머니 잘하던 말
눈에 넣어도 하나도 안 아프다는 말
눈에 자꾸 밟힌다는 말
비유의 치마폭이 장난이 아니다
비유치고는 참 대담한 비유다
그 덕에 내가 지금 시를 쓰는지도 모르지만
스케일로 따지면 나는 겨우 미니스커트 한 장 정도
눈에 사람을 넣는다는 생각
눈에 한 사람을 넣고 걸어 다닌다는 생각
그런 치마, 나는 감당 못 한다
치마에도 급이 있고 관록이 있고
잘 못 두르면 넘어지고 자빠질게 뻔하다
비유란 치마를 훌러덩 뒤집어쓰듯
비유를 통째로 뛰어넘는 것
비유의 통을 아예 엎어버리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눈에 쏙 들어버리는 것
냉큼 한 눈에 반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잘 모른다
비유가 어디서 오는지
그것이 주체인지 객체인지
부려야할지 모셔야할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치마에서 멀다
눈에서도 멀고 마음에서도 멀고
비유 앞에 서면
아직도 그냥 그런 바지다
수조 앞에서 / 송경동
아이 성화에 못이겨
청계천 시장에서 데려온 스무 마리의 열대어가
이틀 만에 열두 마리로 줄어 있다
저들끼리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먹힌 것이라 한다
관계라니,
살아남은 것들만 남은 수조 안은 평화롭다
난 이 투명한 세상을 견딜 수 없다
c. 자세에 대해서 / 道=詩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인 사람이 태양을 알지 못하여 눈이 온전한 사람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장님에게 “태양의 모양은 구리 쟁반과 같소”라고 하자, 장님은 쟁반을 두드려 그 소리를 들었다. 훗날 그는 종소리를 듣고 태양이라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장님에게 “태양의 빛은 촛불과 같소”라고 하자, 초를 더듬어서 태양의 형체를 파악하였다. 훗날 피리를 만져보고 태양이라 생각했다. 태양은 종이나 피리와 훨씬 다르지만, 장님이 그 차이를 모른 것은 일찍이 본 적도 없으면서 남으로부터 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바는 태양보다 더 심하므로, 사람이 도에 통달하지 못함은 장님과 다를 바가 없다. 통달한 자가 알려주는데 비록 교묘한 비유로 잘 인도해준다 할지라도 또한 구리쟁반과 촛불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도는 구할 수 없는 것인가? 나 소자는 말한다. “도는 스스로 이룰 수는 있어도, 구할 수는 없다.... (소식, <일유日喩>)
d. 대상에 말걸기
의자가 있는 골목 / 변희수
-李箱에게
아오?
의자에게는 자세가 있소
자세가 있다는 건 기억해둘만한 일이오
의자는 무엇인가 줄기차게 기다리오
기다리면서도 기다리는 티를 내지 않소
오직 자세를 보여줄 뿐이오
어떤 기다림에도 무릎 꿇지 않소
의자는 책상처럼 편견이 없어서 참 좋소
의자와는 좀 통할 것 같소
기다리는 자세로 떠나보내는 자세로
대화는 자세만으로도 충분하오
의자 곁을 빙빙 돌기만 하는 사람과는
대화하기 힘드오 그런 사람들은 조금 불행하오
자세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이오
……
다리 위의 고양이 / 조용미
이 도시의 유일한 고양이인 너는
조금 살이 쪘구나
수염이 무섭도록 자랐구나
나는 어찌하여 집과 먼 이 거리까지 산책을 오는 것이냐
오늘 밤은 너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마
나는 먼 나라에서 왔다
나는 폐사지의 탑처럼 그리움이 많다 슬픔은 더 많다
흉터도 많다, 너는 없구나
나무다리 아래서 나를 기다린거냐
이 다리를 건너 저 골목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꺾으면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나온다는 걸 너는 알고 있는거냐
너는 내가 두렵지 않구나
내 안의 너와 같은 무엇을 보았구나
그런데 왜 자꾸 길을 막는거냐
네 눈빛이 무얼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
e. 발상의 유형
나사 / 송승환
산과 산 사이에는 골이 흐른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골과 왼쪽으로 돌아가는 산이 만나는 곳에서는 눈부신 햇살도 죄어들기 시작한다 안으로 파고드는 나선은 새들을 몰고 와 쇳소리를 낸다 그 속에 기름 묻은 저녁이 떠오른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그만큼 깊어지는 어둠 한번 맞물리면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떠올랐던 별빛마저 쇳가루로 떨어진다 얼어붙어 녹슬어간다
봄날 빈 구멍에 새로운 산골이 차 오른다
껍질과 본질 / 변희수
쳐다도 안 보던 껍질에 더 좋은 게 많다고
온통 껍질 이야기다
껍질이 본질이라는 걸 뒤늦게사 안 사람들이
껍질이 붙은 밥을 먹고 껍질이 붙은 열매를 먹는다
이때껏 깊숙한 곳에 있는 것이
본질인줄 알고 나도 시퍼런 칼을 마구 휘둘렀다
연하고 보드라운 것에 집착했다
본질은 함부로 닿을 수 없는 곳에나 있다고 믿었다
공부할 때도 연애할 때도 시를 쓸 때도 그랬다
급하게 칼부터 밀어 넣었다
맨살로 덩그러니 나앉은 것 같은 날
허약한 내부를 달래주듯
껍질째 아작아작 사과를 먹는다
잘 씹히지 않는 본질을 야금야금 씹어먹는다
f. 처음처럼(시에 대한 반성)
지남철 / 신영복
北極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을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료&꺼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4.13 선거의 숫자 의미 10가지 (0) | 2016.04.15 |
---|---|
매미의 오덕-문청렴검신 (0) | 2016.04.13 |
나의 시창작법-직통은 없다/문성해 (0) | 2015.03.20 |
올곧은 길 묻다/우보 류시중교수님께 (0) | 2014.06.18 |
[스크랩] 독도 (0) | 2014.05.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