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창작법
직통은 없다/ 문성해
시를 어루만지기 위해 내가 하는 짓거리들을 열람해보는 것으로 나의 졸렬하고 조금은 연민스런 시작법의 문을 열어본다. 단, 이 짓거리들은 나처럼 한자리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분들이거나 여기저기로 마음 쓰이는 데가 많은 분들에게는 적합한 방법일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다. 하긴 집중력을 타고 난 후자의 분들이라면 글 아니라 무엇을 한들 걱정이 있으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내게 있어 이 길이 맞는지 안 맞는지 확신도 없이 걷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다. 얄팍한 속임수 같은 몇 가지 재주로 세상을 속이고 나를 속이는 일로 눈이 멀어가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숨어 있기 좋은 밖
나는 혼자 있기 위하여 밖을 싸돌아다닌다. 밖에서만이 유일하게 혼자가 된다는 건 가족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집이란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주는 곳인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공간이다. 그래서 남자나 여자나 있는 이유, 없는 이유 들어 집이란 곳에서 될 수 있는 한 멀어지려고 애쓰는 지도 모른다. 특히나 여성에게 집이란 쉬는 곳이라기보다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가사에 시달리는 곳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밖은 유혹이 많은 곳이고 탐닉하기 좋은 곳이다. 그곳에서 나는 타자들을 유혹까진 못하더라도 그들을 열심히 눈 속에 담아 두는 데 탐닉한다. 수많은 사람과 사물을 만나러 밖을 싸돌아다니는 일은 시를 발견하는 일인 동시에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내가 이따금씩 펄떡이는 소재들을 건져 올리는 곳도 무한하게 열린 이 밖이라는 낚시터이다.
영감보다는 감정이입
영감이란 단어가 내게서 사라진 지는 오래되었다. 무작정 시가 좋아서 시인이 좋아서 시와 시인을 흉내 내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불시에 들이닥치는 영감들로 몸을 떨었던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고부터는(시에 정착하고부터는) 그러한 영감들은 다른 방랑자들에게로 떠났던 것 같다. 영감이란 민낯의 무욕의 상태라야 만날 수 있는 보석이다. 그것은 금광에서 곡괭이질을 하는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설령 발견 해내었다 하더라도 곡괭이의 날카로운 날에 산산이 깨져 있는 게 다반사이다. 그래서 영감이란 영육이 자유로운 뮤즈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이후, 나는 그것을 기다리기보단 그것을 찾아 나서기 위해 무슨 방법이든 써야 했다. 나는 풀이든 벌레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가리지 않고 내 전신을 그들 속으로 투영해내기 위하여 애썼다. 처음에는 나를 튕겨 내던 그것들이 내게 방석을 내밀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너무 나를 드러내서도 너무 나를 죽여서도 안 되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흔들리는 풀을 바라보는 일은 경이로웠다. 추운 땅 속에서 동치무 무로 박혀 있는 일도, 아무도 오지 않는 언덕에서 점점 두꺼워지는 눈외투를 껴입고 눈사람으로 서 있는 일도, 목련 나무 아래 묶여진 개 한 마리로 앉아 있는 일도 그랬다. 그들의 심정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좀체 시가 나오지 않았다. 밖을 걷고 있는 것은 나였으나 나는 풀이었고 호수였고 연꽃이었고 골목에서 요강을 안고 나오는 노파였고 벽이었고 돌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나를 불러주면 황급하게 다시 나로 돌아왔다. 이제 내게 다시 영감이 돌아오기는 그른 것 같다. 언제까지 이것이 통할는지는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이 방법을 고수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밀화 경계하기
시를 알아갈 무렵에는 연필의 촉을 갈아 무작정 세세하게 그리려 애썼다. 그게 시를 잘 쓰는 방법이고 그런 시가 잘 된 시라고 생각했다. 그렸다간 또 지우고 그렸다간 또 지우고를 수십 번, 도화지가 습기로 찢어질 정도가 되어서야 완성된 그림은 애초의 수채화가 아닌 물감 범벅의 유채화가 되어있기 일쑤였다. 설명하면 할수록 답답해지는 게 시라는 걸 알 턱이 없던 나는 남이 내 의도를 못 알아차릴까 봐 그렇게 했고 그렇게 안 하면 불안해했다. 여백에서 무언가를 말하는 게 시적 발견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날, 호젓하게 떨어진 거리에서 내 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자연스레 찾아왔다. 의자를 뒤로 한껏 빼고 글자가 겨우 보일 정도의 거리에서 보는 내 시는 남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그때부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빽빽한 말들의 조합이 싫어졌다. 거의 구호 수준의 새된 내 목소리도 이젠 넌더리가 났다. 아끼는 사람일수록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라고 하지 않던가? 시에게도 이런 밀당이 필요했다. 덕분에 전체적인 밑그림을 다시 그리고 사각지대 같은 틈에는 다른 풍경이나 추억을 끼어 넣는 여유도 가지게 되었으니 시고 연인이고 조금 떨어져 있고 볼 일이다.
이제 나의 이 졸렬하고 연민스런 짓거리들을 기초로 하여 실제로 어떻게 시가 고쳐졌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아래는 시 「기다리는 무덤」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도입부분이다.
백영감 무덤 곁에 또 무덤 자리는
마나님 무덤 자리
죽어 홀애비가 된 백영감 무덤은
기다림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는데
죽은 자가 산 자를 기다리는 모양이
그래 너 실컷 잘 놀다 오라는 듯
고양이가 햇볕에 아랫배를 축 늘어지게 누워 있는 모양으로
벌써 십수 년 째
늦봄 등산길에서 얻은 것이 이 무덤 두 개였다. 한 개는 자꾸만 무너져 누군가의 긴 인중처럼 길어지고 있는 무덤과 한 개는 그 곁에 있는 아직 사람이 들지 않은 가묘였다. 사람이 들어있는 무덤과 사람이 들지 않은 무덤 사이에 선 나는 시의 촉수가 스물스물 목구멍 위로 기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무덤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민가에선 저녁연기가 굼실굼실 올라오고 있었는데 나는 일행이 부르는 소리도 잊은 채 혼자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야기인즉슨, 무너지고 있는 무덤은 십수 년 전 죽은 영감의 무덤이고 그 곁의 가묘는 십수 년 째 할멈을 기다리는 무덤이라는 것. 뒷산 아래 살고 있는 할멈은 뒷산에 기다리는 영감은 아랑곳없이 마실 길 다니길 좋아하는, 아직은 이승이 좋고 무덤 같은 건 까마득히 잊은 할멈이라는 것. 그래서 너 실컷 놀다가 와서 누우라고 하던 무덤 속 영감도 이제는 할멈이 좀 와서 곁에 누웠으면 한다는 것
그래도 이즈음 무덤 한쪽이 샐쭉이
장마가 들지도 않았는데 이지러지는 것은
마나님이
꼬쟁이 바람으로 너무 꼬장꼬장하게
마실 다니는 것이 조금은 미워 보인 모양인데
이젠 좀 그만 곁에 와서 누웠으면 하는지
늦여름 하오 무덤이
마나님 인중처럼 더욱 길어져만 가는데
여기까지는 물 만난 소설가마냥 신나게 자판을 두들겨 댔다. 내가 칼을 들고 진두지휘할 때의 쾌감을 느끼며 마치 한 편의 극본을 쓰는 것처럼 이야기가 술술 나왔다. 이대로 간다면 한 편의 서사시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앞장서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니만큼 재미가 있어야 했고 재미가 없으면 끝장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그 재미를 이어가자는 생각으로
그래도 마나님은 안즉 멀었는지
오늘 밤도 분 오른 고구마 잇몸으로 긁어가며
동네 마나님들과
죽은 영감 욕을 고명으로 얹어가며 킬킬 거립니다
뒷산 영감 다 들으라는 듯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내가 할 말 안 할 말 다 해서 내 속을 다 보인 꼴밖에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탈했다. 이 시는 내가 너무 깊숙이 개입하였고 너무 세밀하게 붓을 들이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팽개쳐두었다가 어느 날, 의자를 한껏 뒤로 빼고 마치 남의 시를 들여다보듯 보고 있자니 무연히 돋는 생각들이 있었다. 내가 들 무덤을 먼저 만들어놓고 사는 사람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나를 기다려주는 무덤이 있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그러자 누군가가 먼저 가서 기다려주는 무덤은 참 따뜻한 곳이고 죽음에 드는 일조차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황을 보여주고 느끼게만 해주면 될 일을 나는 괜히 있지도 않은 '백영감'이니 '마나님'까지 동원하여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던 것이다. 소재를 놓치기 싫어 그 소재만 붙잡고 늘어진 결과였고 또한 의욕이 앞선 결과였다.
생각들이 달아나기 전에 다시 시를 쓰기로 한 이상 버려질 시에 연연할 필요는 없었다. '죽어 홀아비가 된'과 '인중처럼 길어진'만 빼고 나머지 것은 다 지워버리기로 했다. 아깝다거나 참담하다거나 한 순간은 잠깐, 오히려 생각들이 차분히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생각들은 채반에 한번 걸러진 뒤라 한결 묵직하고 듬직했다. 한 행 한 행 뒤에는 심호흡을 하듯 빽빽하게 쓰려는 욕구를 버리고 여백을 두려 했다. 한 연이 끝나면 다시 이어질 연을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끌어와 넣으니 적어도 너무 뻔한 내용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에는 처음부터 이런 식의 접근을 하리라 맘먹지만 여전히 나는 시 앞에서 그러한 전철을 또 밟고 만다. 직통인 길을 두고도 매번 비포장 길을 고단하게 덜커덕거리며 가고야 만다.
기다리는 무덤
무덤 곁에
또 무덤 자리 있었지요
누군가 미리 봐 놓은
무덤자리 있었지요
무덤 곁을 돌며
죽어 홀아비가 된 사람을 생각합니다
덩그랗게 큰 밥상 앞에서
홀로 닳은 수저를 들며
언제고 돌아갈 고향처럼
이 무덤을 떠올릴 누군가도 생각합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기다리는 무덤이었지요
긴 인중처럼 길어지던 무덤이었지요
이 속에서라면
갈비뼈 사이 파고드는 풀뿌리들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지요
당신이 미리 데워놓은
이 속에서라면
《현대시학》2014년 9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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