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들
이경림
가을비 잠깐 다녀가신 뒤 물기 질척한 보도블록에 지렁이 두 분 뒹굴고 계십니다
한 분이 천천히 몸을 틀어 S? 물으십니다 그러니까 다른 한 분, 천천히 하반신을 구부려 L…… 하십니다. 그렇게 천천히 U? 하시면 C…… 하시고 J? 하시면, O…… 하시고
쬐한 가을 햇살에 붉고 탱탱한 몸 시나브로 마르는 줄도 모르고 그분들, 하염없이 동문서답 중이십니다
그 사이, 볼일 급한 왕개미 두 분 지나가시고 어디선가 젖은 낙엽 한 분 날아와 척, 붙으십니다
아아, 그때, 우리 이목구비는 있었습니까? 주둥이도 똥구멍도 있었습니까?
그 진창에서 도대체 당신은 몇 번이나 C 하시고 나는 또 몇 번이나 S 하셨던 겁니까?
—《신생》2014년 봄호
동문서답.
이경림 시인은 시선이 날카로운 사람이다. 시의 언어의 시각적 측면이 어떻게 심상을 구축해 내는지도 생리적으로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다. 일찍이 이상이 산촌에 들어가 요양할 때 자기가 개울가에 N자 모양으로 앉아 있다고 한 이래 시의 타이포그래피적 측면을 이렇게 능란하게, 그리고 끔찍하게 구현한 이가 없었다.
이 시의 놀라운 반전은 마지막 두 연이다. 여기에 이르러 시인은 우리에게 우리 삶이 바로 보도블록 위의 두 마리 지렁이의 그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단정해 준다. “아아, 그때, 우리 / 이목구비는 있었습니까?/ 주둥이도 똥구멍도 있었습니까?” 이 대목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독자는 차라리 복수를 마치고 난 ‘친절한 금자씨’처럼 케이크에 얼굴을 묻고 울어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의 민얼굴을 비로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렇게 몸부림치고 있다. 햇살이 내리쪼이는 보도블록 위에서 각자 무관하게, 동문서답하며 몸뚱이를 뒤치는 두 마리 지렁이처럼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외면하며 죽어갈 뿐이다.
아이들이 죽어간 진실을 알아야 하겠다고 해도 한편에서는, 마, 고마 하자, 하는 세상, 나도 당신 얘긴 못 들어 드리겠다.
—《유심》2014년 8월호, ‘詩 월평’에서 발췌 - 방만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