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날 밤
김남극
달은 꽃사과에 내려앉아 그 빛으로 발을 씻겠다
달은 마가목 열매에 대롱대롱 걸려 바람결에 쓰닥이겠다
달은 비닐하우스에 내려앉다 밀커덩 궁둥이가 까지며 미끄러지겠다
달은
달아빠진 떡함지 귀퉁이에 앉았다가 들기름 빛에 흩어지겠다
흩어져 지시랑물 얕은 고랑에서 밤새 이슬과 섞이겠다
늦게 불 꺼진 방안 어둠 속으로 얼굴을 쑥 들이민다
달도 진 어두운 개울을 건너다 자주 물소리에 울음을 버린 어른과
도랑가에서 놀다 앞산을 넘어온 달을 따 도랑물에 헹구어 꼬쟁이에 꿰어들고 들어온 아이들과
말라가는 줄콩잎만하게 몸을 웅크리고 마당가에 오줌을 누며 오줌발에 번뜩이는 달빛을 내려다보는 내가
곤히 잠들었다
이끼 낀 마당도 오늘은 넓고 환하다
―시집『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문학동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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