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고은
아침 새소리로
하루의 날씨를 다 아셨지요
새소리 높기로 낮기로 빤드름히 아셨지요
새참 지나
한줄금 내리시겠구나
내일 모레까지
찔금찔금 오다 마다 하시겠구나
반가운 손님이면
오라는 비
좀 지겨운 손님이면
가랑가랑 가시라는 가랑비도
용케 아셨지요
비 오는 날이나 안 오는 날이나
우산이 없지요
비 오면
깔아놓은 멍석 어서어서 말지만
사람이야 그냥 생애 전부로
비 맞으셨지요
어린 나도 아랫뜸 심부름에
그냥 비 맞고 젖으며 젖다 말며 갔다 왔지요
비 맞는 세상을 오래 나는 믿어왔지요
다른 것이야
일부러 청해다가 믿을 나위 없었지요
봄밤의 아버님 산소 원 없이 봄비 다 맞으시는
내려앉은 무덤이셨지요
『유심』(2011.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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