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적
공광규
청양군수가 2014년 개별공시지가 결정통지문을
내가 사는 일산 주소로 보내왔다.
본적인 남양면 대봉리 653번지 지목이
옛날 초가집 두 채 자리여서 대지인 줄 알았는데
밭으로 되어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와 여동생들이 고추와 맥문동을 심을 때
사금파리와 기왓장과 모가 부드럽게 닳은 곱돌이
식구들처럼 다정하게 어울리던 밭이다.
혼자된 어머니가 좋아하던 홍화꽃과 도라지꽃이 출렁이고
겨울을 춥게 보낸 언 고구마와 썩은 무를 버렸던 밭이다.
어린 동생이 마당가에 눈 똥을 삽으로 떠다가 묻고
그걸 알고 강아지와 고양이도 가서 똥을 묻고 오던 밭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참 비어있자
민들레씨앗이 날아와 해마다 식구를 늘리고
무좀에 찧어 붙였던 쇠비름이 뿌리로 자기 영역을 넓히고
명아주가 거미에게 공짜로 잎과 대궁을 빌려주어
거미줄을 치고 반짝이는 아침 이슬을 매다는 밭이다.
지붕이 없어서 별이 가득 내리고
지붕이 없어서 내리는 비를 다 받고
지붕이 없어서 내리는 눈을 다 덮고
벽이 없어서 바람이 무시로 다녀가는 밭이다.
개미와 땅강아지와 귀뚜라미와 지렁이가 모여 살고
산비둘기가 오고 참새가 와서 발자국을 찍고 가는 밭이
내 본적이다.
—《시와 표현》201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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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 1960년 서울 출생. 1986년 《동서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시집『담장을 허물다』『말똥 한 덩이』『소주병』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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