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자고(富者考)
2014-10-27 08:21:25
김욱진 <대구 협성중 교사 • 시인> |
예로부터 전해오는 우리 속담 가운데 돈과 관련된 것이 많다. 돈이라면 뱃속의 아이도 나온다. 돈에 침 뱉는 놈 없다. 돈 빌려주면 돈도 잃고 친구도 잃는다. 돈이 양반이다. 돈이 장사라.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 부잣집 외상보다 비렁뱅이 맞돈이 좋다. 부귀를 누리는 사람 주변에는 남들도 모여들고, 빈궁한 사람 곁에는 친척들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
이는 현존하는 전통고택(대구의 남평문씨 세거지, 경남 거창의 동계고택, 경북 안동의 풍산(하회)류씨 고택들, 충남 외암 마을의 예안이씨 종가, 충남 예산의 추사 김정희 고택, 전남 해남의 윤선도 고택, 서울 안국동 윤보선 고택 등)에서도 정신문화 보존을 위한 수단으로 물질적 측면이 중시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에 가면 주실조씨 시조인 호은 선생이 지은 370여 년 된 종택이 있는데, 이 집안 가훈이 바로 삼불차(三不借)다. 재불차(財不借)·인불차(人不借)·문불차(文不借)인데, 어떤 일이 있어도 재물과 사람과 문장 등 세 가지를 남들로부터 빌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경제적 자립정신(財不借)을 강조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선조들 역시 행복의 수단으로서 부(富)에 대한 열망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이면엔 유교의 체면 문화의 영향으로 돈 좋아하는 걸 내색하면 안 된다는 허위의식도 강하게 배어 있다. 이러한 이중성은 지금껏 전해오는 각종 노랫말이나 문학 작품 속에서 부자들을 풍자적이고 해학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만 봐도 그러하다. 이러한 견지에서 빈부 격차가 극단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부유층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정치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빈곤으로 점철된 절박한 우리의 근대사 속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흘러 들어온 자본주의 물결은 단순히 굶주림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반가움은 잠시였고, 유교 문화에 젖어 있던 우리의 생활 전반을 뒤흔들어 놓은 게 사실이다. 불법 투기나 권력 남용 등의 부도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부유층에 대한 불신의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9대 동안 진사를 지내고 12대 동안 만석꾼의 집안으로 조선 팔도에 알려진 경주 최부자 얘기를 우리는 잘 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과객(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상은 최 부잣집에 내려오는 400년 전통의 가훈이다. 오늘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삶의 태도 몇 가지를 여기서 한번 겸허하게 짚어보자. 첫째, 너와 내가 함께 사는 평범한 공생 내지는 상생의 원리다. 이기주의의 팽배로 지역 간·노사 간·고부 간·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으로 갈기갈기 찢겨진 인심을 우선 끈끈하게 엮어볼 일이다. 둘째, 남에게 후하게 대하고 자신은 철저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는 생활 태도로 일관하는 선비 정신을 오늘의 현실에 걸맞게 새로이 가다듬어야 한다. 셋째, 특권 계층의 사회적 책임감이다. 가치 혼돈으로 얼룩진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난날 부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가를 차분히 되돌아보고 역사의 거울 속에 비친 우리 삶의 모습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부를 축적하는 노력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을 효율적이고 지혜롭게 얼마나 잘 관리해서 오래도록 잘 보존하느냐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자. 방황하는 이 시대 졸부들이여,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 및 해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이미 예정된, 한순간 속의 우리들/김상환 (0) | 2015.01.29 |
---|---|
문협 대구지회장 선거 어디 이런 후보 없소?(영남일보2014.12.3) (0) | 2014.12.04 |
이 시인을 주목한다-사람의 문학(2014봄호) (0) | 2014.03.05 |
[지역신간] 윤회의 시어로 풀어낸 삶의 질문…『행복 채널』-매일신문(2013.11.16) (0) | 2013.11.19 |
김욱진 시인 행복 채널 출간-영남일보(2013. 11. 19) (0) | 2013.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