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인을 주목한다-사람의 문학 2014봄호
(대표시 5편)
빈집
내게는 집이 여러 채 있다
그중에 으뜸은
우주宇宙 한 모퉁이 분양받은 몸집
제일 꼭대기 층엔 골방 둘
그 아래층은
초능력 통신망 닥지닥지 붙은 방 다섯
거기서 숨 한번 길게 들이쉬고 내려서면
마주 보고 마음 나누는 방이 둘
그 아래 밥집 한 채 또 그 아랜 똥집
맨 아래층엔 몸종 거처하는 행랑채 둘
휘, 돌아보니
여태 내가 줄곧 거처한 곳은
오감五感 가득 채워진 빈 방
그 사이
아랫목 구둘 꽉 막혔다
설마, 장작불 활활 지펴대면
막힌 구둘 펑 뚫리겠지, 싶어
행랑채 뒤로 돌아들어가
굴뚝 쿡쿡 들쑤시며
간신히 고개 밀어 넣고
슥, 올려다보니
방마다 주인 노릇하던 놈들
뿔뿔이 다 도망치고,
없다
늦가을 오후
우리 속에 갇힌 닭 한 마리
지붕 위로 날아올라
탈옥수처럼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홍시를 쪼아먹는다
어느 새
벼슬이 판을 치는 세상
눈치를 보며, 나는
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4월, 우포늪
떠날 채비 서두르라는 푸른 함성이 온 늪에 깔린다
칼바람에도 서걱서걱 오만을 떨던 갈대가 입덧 같은 울렁증으로 비틀거린다
언덕배기 서서 정신을 놓아버린 왕버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눈 버쩍 뜬다
제 팔다리로 흐르는 물소리에 버둥대는 낡은 생각들
어디로, 어디로 숨겨야 할까?
더 채워야 할 것이 남았는지 철새들 날개 짓은 굼뜨기만 하다
물러선다는 것이
밀려나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일까
문득, 내 발밑에서 낄낄거리는 자운영 웃음소리
혁명일까
쿠데타일까
학교 쓰레기장으로 출근하는 최씨 노부부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각이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교 쓰레기장으로 출근하는 최씨 노부부
리어카에 김밥 두어줄 싣고
교문 환히 들어서는 늦깎이 학생부부
누구도 반갑게 맞아주는 이 없지만
교실복도까지 살몃 걸어 들어와
간간이 수업 엿듣고 가는 비둘기 한 쌍처럼
운동장 한 모퉁이 쓰레기장에서
버려진 행복을 주워담는 최씨 노부부
정오 무렵이면
허기진 리어카도 어느 새
가득 차오른 폐휴지 더미로 배가 부르다
도반道伴
-비슬산3
저녁 공양 마친 개 한 마리가
방선放禪하듯 절집 마당을 빙빙 돌고 있다
너덕너덕 기운 옷 걸친 노스님이
혓바닥 길게 내민 견공의 목줄을 잡고
묵정밭 매듯 무심히 따라 돌고 있다
연못 속에 우두커니 물구나무선
내 가랑이 새로 길을 낸 물고기들이
바깥세상 환히 들여다보고 있다
법당 앞 반석 위에 쪼그리고 앉은
밤 고양이의 눈빛 휘돌아나가는
보름달처럼
사회적 자아의 알레고리와‘참나’의 발견
-김욱진의 근작시를 중심으로
김상환
1. 김욱진 시인은 2003년『시문학』으로 등단한 이래,『비슬산 사계』(시문학사, 2009)에 이어 최근 시집『행복채널』(문예바다, 2013)을 상재한 바 있다. 데뷔 이후 10년을 넘기면서 꾸준한 그의 시작 활동은 이제 새로운 도약의 시기를 맞고 있다. 하여 그는“생명에 관한 도덕적 진리를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는 데 남다른 재능을 보이고 있으며, 놀라운 통찰력과 탁월한 은유적 이미지를 통해 지적인 울림을 주고 있어 주목할 만한 시인”(이태동)으로 평가받고 있는가 하면,“관계 또는 인연의 빛을 찾는 시인”(문덕수)으로도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시가 생명에 대한 진리와 통찰,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인식을 기본으로 하여 불교적 사유와 상상력에 기인한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이뭣고?’라는 화두와‘참나’에 대한 발견이 바로 그것이다.‘자기’또는‘나’로서 경험되는‘자아ego’가 지각을 통해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인격의 일부라면, 다른 한편으로 자아와 현실의 문제는 문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개인(자아)과 사회(현실)의 유기적 관계와 알레고리를 미학적 전략으로 삼고 있는 그의 첫시집『비슬산 사계』는 유서 깊은‘비슬산’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자아의 탐색과 발견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반해 최근에 펴낸 시집『행복채널』은 사회 역사적 상상력이 더욱 부각되어 있다. 즉 자연 친화적인 서정시의 문법이나 전통의 측면보다는, 구어체의 사용이나 언어유희, 해학적인 기지(機智)와 알레고리 수법이 크게 돋보인다. 하여 ‘참나’의 발견과 추구에 수반되는 사회적 문제의식과 생동감 있는 언어, 번뜩이는 예지는 이번에 발표되는 근작을 중심으로 김욱진 시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이해를 요한다.
2. 사회적 자아와‘참나’의 발견은 김욱진 시의 주제라면 주제다. 두루 아는 바와 같이, 동아시아 권역에서 개인과 사회의 조화는 시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 이미 오랜 미덕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고 보면, 김욱진은 여기에다 불교 사상에 기반해 사회 현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며,‘참나’의 발견을 형상화하고 있다. 관련된 작품 몇 편을 보기로 하자.
우리 속에 갇힌 닭 한 마리
지붕 위로 날아올라
탈옥수처럼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홍시를 쪼아먹는다
어느 새
벼슬이 판을 치는 세상
눈치를 보며, 나는
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늦가을 오후」전문 ①
뿔 없는 소 뿔난 소 다 모여
화합잔치 한 마당 벌이는 청도 소싸움장
열기가 선거유세장보다 더 뜨겁다
(......)
붉은 깃발 펄럭이자
뿔난 소 두 마리 맞짱을 뜬다
온몸에 피멍들고 눈꺼풀이 찢어져도
한걸음조차 물러설 수 없는 단판 승부
소 아닌 소들은 그랬다, 세상살이는 한 방이라고
승부조작이 난무하는 세상
-「청도 소싸움장」부분 ②
①에 나타난 늦가을 오후, 자연의 정취는 낭만적이라기보다는 현실 비판적이다. 시에서 보자면, 감나무에 홍시가 매달려 있다.“까치밥으로 남겨둔”게다. 하지만 까치보다 힘센 닭이, 그것도 탈옥수처럼 우리를 박차고 나와“지붕 위로 날아”오르며“감홍시를 쪼아먹”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매달려 있을 따름이다.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벼슬이 판을 치는 세상”)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는 이 시에서 힘없고 나약한 사물(“감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과‘홍시(나)’의 이미지는 마지막 남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목숨의 절정에 이르러서까지 눈치 보며 살아가야 하는 인간과 삶의 비애다. 힘의 논리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실 사회에서 약자인 까치를 위한 배려란 애당초 없는 법. 권력과 욕망으로 한 개인의 삶이 유린되는 만추의 오후, 시인에 의해 포착된 한 컷은 ②의 경우, 정치와 인생의 허위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세상살이는 한 방이라고/승부조작이 난무하는 세상”) 이러한 입장과 대상(소)의 현실 인식은 분노의 감정에 맞서 대응하기 보다는, 오히려 알레고리컬한 웃음(코뚜레 풀린/笑들)의 방식을 통해 재미있게 처리되어 있다. 평생“배운 거라곤/논밭 갈고 써레질하다/여물죽 받아먹고 되새김질한”소는, 비록 인간 세상의 모순과 술수에 대해 익히 알고 있지만,“온몸에 피멍들고 눈꺼풀이 찢어져도/한걸음조차 물러설 수 없는 단판 승부”를 벌이며 슬픈 피에로가 되고 만다.“소 아닌 소”와 같은 인간인들 무슨 다를 바 있겠는가. 도불습유(道不拾遺)의 고장, 청도의‘소싸움장’은 이제 그런 사람과 동물이 만들어가는 비극적인 삶의 현장이자 유머러스한 무대이다. 이에 반해 다음 작품은 보다 가라앉은 톤으로 가난한 날의 행복과 그 의미를 음미하게 한다.
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각이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교 쓰레기장으로 출근하는 최씨 노부부
리어카에 김밥 두어줄 싣고
교문 환히 들어서는 늦깎이 학생부부
누구도 반갑게 맞아주는 이 없지만
교실복도까지 살몃 걸어 들어와
간간이 수업 엿듣고 가는 비둘기 한 쌍처럼
운동장 한 모퉁이 쓰레기장에서
버려진 행복을 주워담는 최씨 노부부
정오 무렵이면
허기진 리어카도 어느 새
가득 차오른 폐휴지 더미로 배가 부르다
-「학교 쓰레기장으로 출근하는 최씨 노부부」전문
시인의 초점은 마찬가지로 약자의 편에 서 있다. 시제(詩題)가 잘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학교 쓰레기장으로 출근하는 최씨 노부부”가 그들이다.“누구도 반갑게 맞아주는 이 없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그에게 시인의 눈이 오래 머물러 있다. 뭇사람들이 밝고 넓은 광장을 찾을 때, 최씨 부부는 어둡고 좁고 칙칙한 모퉁이에 가 있다. 하면서도, 오히려 거기서 삶의 진실과 행복을 찾는다. 이 푸 투안(Yi-Fu Tuan)에 의하면, 전방 지역(운동장)은 주로‘양陽/남성/밝음/성聖’을 의미하고, 후방 지역으로서 (한) 모퉁이는‘음陰/여성/어둠/속俗’을 일컫는다. 그렇게 보아 사진예술에서 '푼쿠툼punctum'이 그런 것처럼, 시인은 주로 후방위와 배경의 지점에서 생의 깊이와 진실을 발견한다. 이렇듯 삶의 행복이나 진리란 그림자에서 빛을 찾고, 세속의 저자거리나 길모퉁이가 다름아닌 성스럽고 초월적인 장소인 셈이다. 가난한, 그러나 행복한 노부부가 모는 리어카의 수레바퀴처럼 우리네 인생이란 것도 돌고 도는 법. 문제는 마음에 있다. 학교 쓰레기장으로 출근하는 최씨 노부부는 남들이 무심히 지나치고 버리고 간 데서 행복의 씨앗을 찾는다. 또한 그들이 진정 행복한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그리고 가난해서도 배움에 굶주린 학생이라는 사실이다.(“교문 환히 들어서는 늦깎이 학생부부”)
3. 한편, 김욱진 시에 나타난 자아와 현실의 대립 국면은 자연과‘참나’에 대한 인식과 발견을 통해 보다 새롭게 통합된다. 이 경우‘참나’는 본연의 자아를 말한다. 그것은 자아인 에고ego를 통해 표출되며, 윤리적 실존 너머 종교적 실존을 추구할 때 비로소 도달이 가능한 경지다. 김욱진은 흔히 자연과 자아, 종교(특히, 불교)를 방편으로 삼아‘참나’를 발견한다. 첫시집의 표제작인「비슬산」연작시 일부를 보자.
산이란 산은 나이가 들수록 맑고 향기롭다 (...) 산비탈 굽이굽이 돌아올라 발길 머문 대견사지, 주춧돌 언저리 흩어져 앉은 스님바위들은 아직도 묵언정진 중이다 천년의 넋을 달래며 탑돌이 하는 갈바람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텅 빈 속 드러내며 무심히 법문하는 억새풀의 눈빛이 맑다 (...) 달빛 어린 비슬산/ 등성이마다/ 거문고 줄 잡아당기는/ 한갓진 물소리 바람소리 솔방울 웃음소리
-「비슬산 사계-비슬산․10」부분
‘비슬산’이 이 시의 중심 공간을 드러낸 것이라면,‘사계’는 시간을 나타낸다. 시간의 흐름과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본연의 자태와 진리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공간(산)의 미덕이란“나이가 들수록 맑고 향기”로운 데 있다. 자연의 인간적 내지 정신적 변모에 있다.(“스님바위들은 아직도 묵언정진 중이다”,“탑돌이 하는 갈바람”) 깨달음의 지혜와 보리심(菩提心)을 구하는 영혼에게만 허락되는 비슬산의 아름다움은, 미상불 깊은 밤에 이루어진다. 달빛이 조요하고 거문고 가락이 자연의 소리(“물소리 바람소리 솔방울 웃음소리”)와 어우러져 절창을 드러내 보이는 순간이 그것이다. 이는 곧 무심(無心)의 발로이리라. 그 무심의 청정한 순간에 인간은 내면의 소리를 듣고, 향기를 발하며,‘참나’를 발견한다. 다음 시편 역시 그 연장선에 놓이는 작품이다.
저녁 공양 마친 개 한 마리가
방선放禪하듯 절집 마당을 빙빙 돌고 있다
너덕너덕 기운 옷 걸친 노스님이
혓바닥 길게 내민 견공의 목줄을 잡고
묵정밭 매듯 무심히 따라 돌고 있다
연못 속에 우두커니 물구나무선
내 가랑이 새로 길을 낸 물고기들이
바깥세상 환히 들여다보고 있다
법당 앞 반석 위에 쪼그리고 앉은
밤 고양이의 눈빛 휘돌아나가는
보름달처럼
-「도반道伴-비슬산3」전문
이 시의 배경은 저녁 무렵의 절집 마당이다. 공양을 마친 노승과 함께 방선(放禪)을 일삼는 개는 더 이상의 사물(동물)이 아니다. 인간, 그것도 도반이다. 참나의 단계에서는‘아(我)’와‘비아(非我)’의 구분이 별반 뚜렷하지가 않다. 개를 따라 돌고 있는 노스님, 이들은 하나의 원환(圓環)을 그리고 있어 양자의 구분이란 무색하다.‘사제(司祭)의 알레고리’로 지목되는‘개’는 자신을 옥죄는 목줄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평정심(무심)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시편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된다.(“텅 빈 속 드러내며 무심히 법문하는 억새풀”,「비슬산 사계-비슬산․10」) 그런가하면, 참나의 단계에서는 내외/상하의 구분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연못 속에 우두커니 물구나무선 (...) 물고기들이/바깥세상 환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런 불이(不二)의 세계와 언어는 이 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목어’가 뜻하듯 깨어있는 정신적 표상으로서‘물고기’는?바깥 세상을 환히 들여다보고(도 남음이) 있다. 아울러 물고기 ―> 고양이 ―> 보름달의 이미지로 전개되어 윤회의 세상과 진리를 표방하고 있다. 노승의 도반인 개는 물론, 물고기와 고양이의 공통점은 동적인 데 있다. 참선, 혹은 참나의 세계란 것도 이처럼 정중동의 세계, 만월(滿月)을 형상하고 있다.
비슬산 도성암 부처님 뵈러 가는 중,
염주 알 주렁주렁 목에 걸고 서 있는
고욤나무보살 만나
합장 삼배하고 엎드려
고욤 한 알 한 알 주워 먹다
텅 빈 고요 다 삼킨
고욤 따먹고 싶어
나뭇가지 가까스로 손닿는 중,
포행하고 돌아가던 스님 한 분
내 손가락 훔치며
누구요? 소리치는 중,
묵언정진하던 고요
문풍지처럼 바르르 떤다
탁발 나온 고양이 한 마리
두 눈에 불 켜고
저녁 공양 중인 부처님
밥상머리 꿇어앉아
어느 중의 마음
참마음이요
묻는 중,
-「법거량」전문
이 시는 참나(또는, 참마음)에 대한 접근과 표현 방법에 있어 매우 유닉하다.‘법거량’은 중국의 조사선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선문답의 하나다. 이 경우 법거량의 질문 방식에는 일정한 틀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하여 즉문즉답(卽問卽答)으로 진행되는 그것은, 화두(話頭)를 참구해서 깨침을 얻기 마련이다. 이 시에서“어느 중의 마음(이)/참마음”인가 하고 묻는 질문은 진지하다기보다 언어 유희(~“뵈러 가는 중”,“손닿는 중”,“소리치는 중”,“묻는 중”,“텅 빈 고요 다 삼킨/고욤”)에 가깝다. 이런 화법을 통해 성성(聖性)의 세속적인 실현을 도모하며, 그것도 얼토당토 않는 질문의 과정(‘중’)과 연속을 통해 현답에 이르는 것이, 참나와 참마음에 이르는 길은 아닐까. 번뇌가 열반이며, 세속이 초월의 다른 이름이라면, 자아인 에고가 아니고선‘참나’를 찾을 수 없다. 그런 역설의 진리를 앞에 두고 있는 법거량의 문(門, 問, 文)에서‘고요’는‘나무’다. 그 고욤나무가 다시 보살로 거듭나 있다면. 고양이는 탁발을 마다 하지 않는다. 포행(匍行)을 일삼는 승려들이 절집 마당을 거닐게 되면,“묵언정진하던 고요(는)/문풍지처럼 바르르 떤다”어느 말이 진언(眞言)이며, 어느 마음이 참마음인가? 이는 김욱진만의 독특한 발상과 조어법을 확인하는 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다음 작품은 더욱 이채를 띤다.
내게는 집이 여러 채 있다
그중에 으뜸은
우주宇宙 한 모퉁이 분양받은 몸집
제일 꼭대기 층엔 골방 둘
그 아래층은
초능력 통신망 닥지닥지 붙은 방 다섯
거기서 숨 한번 길게 들이쉬고 내려서면
마주 보고 마음 나누는 방이 둘
그 아래 밥집 한 채 또 그 아랜 똥집
맨 아래층엔 몸종 거처하는 행랑채 둘
휘, 돌아보니
여태 내가 줄곧 거처한 곳은
오감五感 가득 채워진 빈 방
그 사이
아랫목 구둘 꽉 막혔다
설마, 장작불 활활 지펴대면
막힌 구둘 펑 뚫리겠지, 싶어
행랑채 뒤로 돌아들어가
굴뚝 쿡쿡 들쑤시며
간신히 고개 밀어 넣고
슥, 올려다보니
방마다 주인 노릇하던 놈들
뿔뿔이 다 도망치고,
없다
-「빈집」전문
김욱진 시의 지배적 이미지 가운데 하나인 ‘빈(비어있음)’은 기본적으로 불교의 ‘공(空)’ 사상에 기초한다. 공(空)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고 하는 불교의 근본 교리를 말한다. 이는 곧 사물이란 실체가 아닌 관계로만 성립되는 ‘무아(無我)’이며, 그러기에 다름아닌 ‘공(空)’이라는 말이다. 이때의 공은 고락(苦樂)과 유무(有無)의 양극을 떠난 중도(中道)라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달리말해, 진공 그대로가 묘유인 셈이다. 이런 시적 가능성과 성취는 빈 마음과 신체 감각을 두루 동원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태 내가 줄곧 거처한 곳은/오감五感 가득 채워진 빈방”) 인간의 몸은 본시 대자연과 우주로부터 부여받은 집인 터라 그 마음 또한 고요하고 편안하다.(“숨 한번 길게 들이쉬고 내려서면”) 뿐 아니라, 진리와 대면하도록(“마음 보고 마음 나누는”) 되어 있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몸=집’의 주체는 본래 없는 것이다.(“방마다 주인 노릇하던 놈들/뿔뿔이 다 도망치고,/없다”) 그런‘있다/없다’의 유무마저 무화시키고 난 연후에 주어지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마음이 공(空)이 아닐까. 이 비어있음은 흔히 양가성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즉 ‘빈leeren’ 공간이란 말은 동시에 무언가를 ‘모으는lesen’ 공간을 의미한다. 이 경우 ‘모으는 공간’은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어차피 텅 비워져 갈 우리의 몸이자 삶이라면, 그러기에 더욱 충만한 마음과 시라면, 우리는 이 ‘빈집’ 혹은 비어있음의 진리와 역설을 충분히 음미할 필요가 있다. 비어있음으로 허무함이 아니라, 허무를 (허)무화하는 무(無)의 사상, 공(空)의 마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시를 수용하는 데는 빈 마음과 오감이 필요하다. 평이한 시어와 알레고리 수법으로 주제의 깊이를 천착한 데서 우리는 이 시를 읽는 기쁨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다음 작품은 또 어떤가.
나는 씨줄과 날줄 사이 태어난 줄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 줄 가서 기웃, 저 줄 가서 기웃
줄 괴고 널뛰며 돌아다니다
배배 꼬인 줄 하나, 툭 터져
길바닥 축 늘어져 누웠다
어미닭이 울었다, 홰치며
하늘 부둥켜안고 울었다
묵은 빚 독촉하듯
줄 잡아당기는 하늘
식은 밥 한 술 푹 떠먹었다
헐렁해진 줄 틈새로
줄타기하며 지나가는
바람의 웃음소리 들렸다
임진년 끝자락
둥지 한 구석에서
빈 껍질 쪼아대는
안과 밖
-「줄탁」전문
‘줄탁동시(啐啄同時)’또는‘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안과 밖에서 함께 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이 경우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줄啐’이라 하고, 어미닭이 밖에서 쪼는 것을‘탁啄’이라 한다. 이것이 함께 이루어져야 부화가 가능하다는 말이다.‘동기(同機)’란 말 또한 안의 병아리 부리와 밖의 어미닭 부리가 서로 일치하여 껍질이 깨어지는 순간을 말한다. 이를 소재로 재해석한 이 시는 줄광대의 비애를 형상화하고 있다. 우리 인간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생의 외줄타기를 반복하고 있는 어릿광대가 아니던가.‘재주놀이가 시작되기 전 또는 막간에 나와서 우스운 이야기나 짓을 하여 판의 흥을 돋우어 주는 사람’이‘어릿광대’라면, 그는 막간의 인생을 살다“배배 꼬인 줄 하나, 툭 터져/길바닥(에) 축 늘어져”눕기도 하고, 한 새벽 어미닭이 울 때 더러는“하늘(을) 부둥켜안고 울”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종내는 안팎이 텅 빈 껍질(“둥지 한 구석에서/빈 껍질 쪼아대는/안과 밖”) 뿐인 인생이다. 허나 여기서 우리는“헐렁해진 줄 틈새로/줄타기하며 지나가는/바람”처럼 생의 반전을 꿈꾸기도 한다. 바람이야말로 넓고 큰, 진정한 광대(廣大)다. 걸림이 없다. 말의 흥감과 함께 참나의 존재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이 시에서, 또하나 중요하게 취급될 것은 시작(詩作)의 의미다.“나는 씨줄과 날줄 사이 태어난 줄이었다”에서 보듯이, 나(또는, 시와 시인)은 언어의 씨줄과 날줄이 교직해 아름다운 시의 비단을 만드는 게 생명이다. 그렇다면, 시작 역시 그 씨줄과 날줄‘사이’에 존재한다. 하이데거에 있어‘성스러움’과‘시인’은‘사이’의 존재다. 사이는‘경계’이자,‘차이나는 것들의 관계’를 말한다. 관계의 사유는 김욱진 시의 특장이다. 생(生)이라는 외줄타기에서 시인은 사이의 존재와 무(無)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 사이의 무(無)와 존재야말로 참나, 혹은 성스러움이 태어나는 장소가 아닐까.
4. 김욱진은 지금 늘그막에(?) 시마(詩魔)에 들어 있다. 그런 그의 시는 기본적으로 서정시를 지향한다. 하지만 그것은 일 개인의 단순한 감정이나 정서의 표출이 아니라, 사회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고 있다. 서정과 현실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시, 평이하면서도 촌철살인의 무엇이 깃들어 있는 그의 시에서 문제는 참나에 대한 발견과 통찰(력)이다. 때론 시니컬하게, 때론 맑고 고요하게 떠흐르는 그의 음성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신명이 나다가도, 명상에 잠기게 된다. 에른스트 피셔에 의하면, “예술은 인간을 전체 현실과 통합시키는 수단”이다. 그런 문학 예술의 힘과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는 타자의 경험을 공유하고 전체성을 획득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자아와 참나의 발견은 시인 김욱진이 새롭게 추구하고 실현한 시와 삶의 기술이다. 마음의 둥지다. 꽃 피는 봄날, 신(神)이 내린 그의 시를 우리는 이제 예의 주시할 때가 왔다.
내게 신이 내렸다/걸신이 내렸다/굶주림 채우지 못해/언제나 허기진//염천을 떠돌던 글귀/한 아가리에 받아먹고/봇물처럼 차오른 말씀들/어디에 내려놓을까//무당 찾아/내림굿 할까//훠이/훠이//잡귀는 물러가고/싯귀만 남았거라//훠이/훠이//이 늘그막에/내게 글신이 내렸도다 (「시마」전문)
■ 1981년 8월『월간문학』으로 데뷔. 시집『영혼의 닻』및 번역(공역) 시집『칸초니에레』출간.『현대시학』,『시와시학』,『시와반시』등지에 평론 다수 발표. 한국화이트헤드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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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진 시인 행복 채널 출간-영남일보(2013. 11. 19) (0) | 2013.11.19 |
시집 읽으며 여행을 떠나는 법-김욱진 시인 제2시집 <행복 채널> 출간 (0) | 2013.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