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술빵 냄새의 시간」
컹컹 우는 한낮의 햇빛
달래며 실업수당 받으러 가는 길
을지로 한복판 장교빌딩은 높기만 하고
햇빛을 과식하며 방울나무 즐비한 방울나무
추억은 방울방울*
비오는 날과 흐린 날과 맑은 날 중 어떤 걸 제일 좋아해?**
떼 지은 평일의 삼삼오오들이 피워 올린 하늘
비대한 구름떼
젖꽃판같이 달아오른 맨홀 위를 미끄러지듯 건너
나는보름동안아무것도하지않았습니다.
나도 후끈 달아오르고 싶었으나 바리케이드
가로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바리케이드
곧게 편 허리며 잎겨드랑이며 빈틈이 없어
부러 해놓은 설치처럼 신비로운 군락을 이룬
이 한통속들아
한낮의 햇빛을 모조리 토해내는
비릿하고 능란한 술빵 냄새의 시간
끄억 끄억 배고플 때 나는 입 냄새를 닮은
술빵의 내부
부풀어 오른 공기 주머니 속에서 한잠 실컷 자고 일어나
배부르지 않을 만큼만 둥실
떠오르고 싶어
* 1991년에 발표된 에니메이션.
** 〈추억은 방울방울〉에 나오는 대사.
▶ 시 · 낭송 _ 김은주 – 김은주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희치희치』가 있다.
배달하며
한낮 햇빛이 컹컹 울다니요! 인상적인 첫 구절입니다. 햇빛도 구름도 하늘도 다 좋은 화창한 날씨인데, 실업수당을 받으러 가는 길이라니! 지금 당장은 실직 상태라는 얘기잖아요. 청춘은 왜 그리도 아픈 게 많을까요? 후끈 달아오르고, 둥실 떠오르고 싶은데, 현실에 널린 것은 온통 장애물들! 그 사실이 “가로수는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바리케이드”에서 얼핏 암시되죠. “술빵 냄새의 시간”이란 술빵이 부풀고 익어가는 시간이죠. 술빵은 숙성하고, 사람은 성숙해집니다. 그리고 숙성이나 성숙에는 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공통점이 있죠.
문학집배원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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