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명상
김이랑(본명 김동수)
길 끝에 섰다. 여기서부터는 길이 없다고 벼랑은 단호하게 깎아지르나 위로는 날개 달린 자의 길이요, 아래로는 지느러미를 가진 자의 길이다. 잡다한 생각을 잠시 비우려 길을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길 위에서 길을 생각한다.
길은 움집에서 움이 텄다. 지렁이보다 느린 길은 이웃을 이으면서 건넛마을로 뻗었다. 길은 온순했다. 키 작은 동산도 함부로 절개하지 못해 한참 망설이다 가장자리로 돌아서 갔다. 꼬부랑길은 들을 만나면 몸을 주욱 폈다가 높다란 산에 막히면 오체투지로 구불구불 기어올랐다. 고갯마루에 오르면 잠시 땀을 식히며 온 길을 돌아보고 갈 길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턴가 길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도시에 모여 촘촘하게 조직된 길은 직진성으로 진화해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요즘에는 웬만히 두꺼운 산쯤이야 단박에 뚫어버리고 넓은 강도 단숨에 건너는가 하면 도움닫기로 섬까지 펄쩍 건너뛴다. 길은 거대한 그물이 되어 산과 들을 포획하고 이제는 구획을 갈라 무슨 길 몇 호로 서식지까지 지정해주며 수월하게 모든 동식물을 손아귀에 넣는다.
길은 동맥경화로 심장이 마비되면 땅속으로 혈맥을 확장한다. 그렇게 소생한 길은 무한으로 증식하는 연체동물처럼 지금 이 시간에도 두메 곳곳을 잠식한다. 길에게 옆구리를 잘린 산이 고통을 이기지 못해 흙더미를 퍼부으면 길은 산을 관통해버린다. 앞길이 막혀 성난 물이 가끔 아스팔트를 뒤집거나 팔다리를 잘라보지만 길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더 강하게 재생된다. 길 위에는 함부로 덤볐다가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난 짐승의 흔적이 가끔 보이는데, 사람도 잘못 가로지르다가는 가차 없이 벌금을 물거나 늑골이 부러진다.
언제부터 길이 사나워지기 시작했을까. 봇짐장수가 하나 둘 사라질 때인지, 숨을 헐떡거려도 좀처럼 빨라지지 않는 경운기가 투덜댈 때인지, 고무신보다 질긴 타이어가 나타날 무렵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거슬러 올라가면, 논두렁을 곧게 펴면서 물길도 직선으로 낼 즈음이니 물과 관계가 있다고 보인다. 사마귀 같은 굴삭기와 큰 트럭이 강 상류에 떼로 몰려와 거대한 댐을 쌓고 나서, 웅숭깊던 우물이 마르고 갈증을 못 이긴 실개천은 길에 투항했으니까.
길섶에 올망졸망 초가집이 살던 시절, 길은 놀이터였다. 논길에서는 쇠똥 밟아도 풀잎에 쓱쓱 닦고 누렁이 뒤를 따랐다. 들길에서는 자기 발에 걸려 엎어져도 애먼 돌멩이 냅다 걷어차고 다시 굴렁쇠를 앞세웠다. 장터로 가는 길에는 거름 한 짐 지고 장에 간 아제가 거나한 막걸리에 붉게 취해 저녁노을을 등지고 돌아왔다. 길은 떠나고 돌아오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더욱 아까운 길은 다들 어디로 떠났을까.
시인은 노래하고 철학자는 분석한다는데, 어째서 길이 사나워졌는지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길을 떠나도 여전히 길 위에 있으며, 길이 없어 떠나는 길도 길이라 하는 오류를 말하는 이도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시행과 착오를 겪다보면 길을 찾게 된다는 경험론 하나만 배낭처럼 달랑 멘 채 길을 떠난 것이리라.
그냥 길을 걸었다.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고, 연못가에서 물수제비도 떠보고, 갈림길을 만나면 마음이 가라는 길로 향했다. 경쟁도 질투도 없는 길을 걷다보면 인생의 출력은 심장 하나로 충분했다. 느릿느릿 자벌레처럼 세상을 한 발 두 발 재다보면 나를 따르는 길이 점점 늘어났다. 고갯마루에 올라 뒤를 돌아보면서 알았다, 내가 잰 것은 고도나 속도가 아니라 깨달음의 길이長라는 것을.
쉬지 않고 내달리다보면 길도 지치는가. 요즘에는 느린 길이 산들바다로 실핏줄처럼 뻗는다. 하늘정원길, 외씨버선길, 해파랑길, 이름이 예뻐서 가보면 마음씨가 순해서 정겹기만 하다. 그 길에는 고도와 속도를 제한하는 팻말도 없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나지막해지고 걸음은 느려진다. 사람도 길을 닮아 길도 물도 서로 양보하는 징검다리에는 먼저 건너라는 손짓이 개울을 먼저 건너온다.
길 끝에서 발길을 돌린다. 바다를 끼고 도는 길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걷고 있다. 꿈을 품고 도시로 떠났으나 물질문명의 소용돌이에서 빌딩숲에 눌리고 질주음에 지친 영혼들이다. 저 행렬을 보면서 나는 출세를 위해 떠난 사람도 거름을 지고 장에 가듯 떠난 사람도, 일등만 알아주는 세상에서 달음박질치다가 지치면 느릿해서 행복한 길로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먼저 닿기 위해 길을 가면 길을 알지 못한다. 산길을 발밤발밤 노래하는 사람은 산꽃이 차례대로 피고 지는 까닭을 알게 되고, 들길을 거니는 사람은 알곡이 도담도담 여무는 속도를 보게 된다. 다람쥐며 산새며 송사리며 풀꽃이며, 길섶에 있는 것들은 느릿하게 눈을 맞추는 영혼에게 말을 걸어오므로.
진달래, 찔레꽃, 산딸기가 줄지어 피는 산모롱이 길은 통째로 먹어도 맛있다. 짤랑짤랑 가위소리가 먼저 뛰어오는 길은 엿가락처럼 몇 토막 뚝 잘라 먹어도 좋다. 바깥에만 두기 아까워 내 안으로도 내고 싶은 길을 찾아 나는 또 길을 떠난다.
(2015. 12. 계간 동리목월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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