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신림동
이규리
다섯 평을 견디는 낮과 밤들아
너무 애쓰지 마
우리는 잊혀질 테니
식당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다
한 방향으로 앉아
꿈을 버렸느냐 그런 건 묻지 않는다
골목마다 반바지와 슬리퍼가 나오고
저 발들이 길을 기억하게 될는지
비참하지 않기 위해 서로 말을 걸지 않는데
그게 더 비참하단 걸 또 모르는 척 한다
더위 정도는 일도 아니야
다섯 평을 견디는 이들은
세상이 그들을 견디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신림동은 산다 하지 않고
견딘다 한다
그래서 골목이 숨어라숨어라
모서리를 만들어 준다
나도 이곳에 편입해
순두부 알밥 부대찌개 사이 모서리를 돌 때
목이 메여
자꾸 목이 메여
목을 맬까 생각도 드는 것이다
언젠가 TV에서 본 장면이 잊히지 않아
한쪽 발에만
간신히 걸려 있던 삼선 슬리퍼
이건 끝을 모르는 이야기
갈매기처럼 한 곳을 향해 혼자 밥 먹던 이들아
슬퍼하지마
우리는 잊혀질 테니
말없이 사라진 슬리퍼 한 짝처럼
슬리퍼조차 떠나간 빈 발처럼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시』(작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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