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수상작

2014 <농어촌문학상> 최우수상 당선작 / 장은선

김욱진 2016. 6. 18. 10:41

       농부

         장은선

 

 

하얀 야구모자를 쓴 학 한 마리

분주히 벼 포기를 오고 간다

땀으로 살 붙인 이삭에 묵례하듯

지나온 자기 삶을 솎아 내며

쉬임없이 피사리하고 있다

농기계도 못 들어가는 다랑이 논매미에

겨울산을 내려온 부엽토 녹은 물로

닫혔던 마음을 열듯이 물꼬를 터

써레질을 했다

서투른 셈을 하여 여백이 충만한 오후

이삭을 엿보는 들새 떼에게

하늘 아래 같은 길을 가는 친구인 양

주름진 손을 내밀어 보인다

흙투성이 작은 논물에 온 생을 담그고

귀한 꽃 보다듬듯 벼포기를 쓰다듬으며

쌀알만큼 어여쁘고 튼튼한 섭리가

세상에 있느라며 헛웃음을 짓는다

가을을 재촉하는 투명한 바람에

허리에 찬 면수건이 습자지처럼 흔들리자

보고 있던 활자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려

쌀뜨물처럼 흘러온 나도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