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장은선
하얀 야구모자를 쓴 학 한 마리
분주히 벼 포기를 오고 간다
땀으로 살 붙인 이삭에 묵례하듯
지나온 자기 삶을 솎아 내며
쉬임없이 피사리하고 있다
농기계도 못 들어가는 다랑이 논매미에
겨울산을 내려온 부엽토 녹은 물로
닫혔던 마음을 열듯이 물꼬를 터
써레질을 했다
서투른 셈을 하여 여백이 충만한 오후
이삭을 엿보는 들새 떼에게
하늘 아래 같은 길을 가는 친구인 양
주름진 손을 내밀어 보인다
흙투성이 작은 논물에 온 생을 담그고
귀한 꽃 보다듬듯 벼포기를 쓰다듬으며
쌀알만큼 어여쁘고 튼튼한 섭리가
세상에 있느라며 헛웃음을 짓는다
가을을 재촉하는 투명한 바람에
허리에 찬 면수건이 습자지처럼 흔들리자
보고 있던 활자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려
쌀뜨물처럼 흘러온 나도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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