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수상작

현고수/박형권-2016천강문학상 최우수상

김욱진 2016. 12. 27. 18:15

                  현고수
                             박형권

나는 북을 걸어둔 느티나무다
몇 발자국 뒤의 생가에서 나와 둥두둥! 북을 두드리는
마흔 살 선비다
그 선비의 붉은 칠릭이어서 뿌듯하다
육백년을 살았어도 불혹의 깊은 속을 다 읽지는 못하지만
선비와 나는 한 몸이다
나는 성리학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되었고
별시문과에 뽑혔으나 임금의 비위를 거스른 문장이라
합격이 취소되었다
첫 줄기의 생장점이 꺾인 것이다
그리하여 잎눈과 꽃눈을 내지 않았다
한양 쪽으로는 이파리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나의 북소리는 주경야독에서 나왔고 은둔에서 나왔다
임진년 허술했던 봄, 임금은 벌벌 떨고 관군은 도망할 때
나는 스스로 의병을 일으켰다
비루하고 인색하다고 입에 오르내린 사재를 털어
천강홍의장군이라는 깃발 아래도 의병들을 불러들였다
나는 알았다
북은 스스로 운다는 것을
정암진에서 붉은 칠릭을 입고
이천의 의병으로 이만의 왜군을 수장시킬 때도
관군은 도망치고 시기 질투하였다
나는 날랜 병사를 불러 핏빛 옷을 입혔다
홍의장군은 어디에나 있었다
임금이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잠깐 하다가 손을 놓았다
그건 모두 어린애를 홀리는 단물과 같은 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패랭이 장사를 하며 솔잎을 먹으며 출사를 거절했다
모든 것이 북소리로 시작되었다
마침내 오늘에 와서 다시 북을 건다
명예롭게 남고 싶은 백성들은 누구라도 와서 두드려라
오늘 밤 바람이 몹시 차다
너희를 덮을 만큼 잎을 떨어뜨린다
따뜻한가?

1961년 부산출생. 경남대학교 사학과 졸업. 2006년 <현대시학>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