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대구문학 7,8월호 김욱진 시 격월평
시집 한 권 냈다고
팔십 평생 땅뙈기 일구고 산 오촌 당숙께 보내드렸더니
달포 만에 답이 왔다
까막눈한테 뭘 이래 마이 지어 보냈노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를, 우린
시래기 국만 끓여먹고 살아도 배부른데
허기야, 물 주고 거름 주고 애써 지은 거
아무 맛도 모르고 질겅질겅 씹어 봐도 그렇고
입맛 없을 때 한 이파리씩 넣고 푹 삶아먹으면 좋것다
요즘은 시 나부랭이 같은 시래기가 금값 아이가
이전에 장날마다 약장수 영감 따라 와서
한 많은 대동강 한 가락 불러 넘기고
한 바탕 이바구하던 그 여자
시방도 어데서 옷고름 풀듯 말듯 애간장 태우며
산삼뿌리 쏙 빼닮은 만병통치약 팔고 있나 모르것다
그나저나 니 지어 논 시
닭 모이 주듯 시답잖게 술술 읽어보이
청춘에 과부 되어 시집 안 가고 산 아지매
고운 치매 들었다 하이
내 맴이 요로코롬 시리고 아프노
시도 때도 없이 자식 농사가 질이라고 했는데
풍년 드는 해 보자고 그랬는데
-김욱진, 「시, 생전 듣도 보도 못한」전문
김욱진의 시에는 저잣거리의 말과 날 이미지가 있다. 비판과 풍자, 그리고 유머가 있다. 일상의 이바구와 육자배기 같은 노랫가락이 있다. 그런 그에게 시란 대수가 아니다. 팔십 평생 땅뙈기(나) 일구고, 까막눈인 오촌 당숙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시래기 시 나부랭이 같은 것이다. 그런즉 시는 비非의 언어이자, 즉비卽非의 언어다. 생각해 보면, 시래기 시래기 하지만 시래기 만한 음식이 어디 또 있는가. 좋은 시는 그런 곰삭은 삶과 인간에서 발효된 언어, 차이의 일상을 드러내는 데에 있다. 그에게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지어 논 시)이다. 농사를 짓듯이 (언어의) 집을 짓듯이, 시는 짓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런 시짓기와 사유하기의 사이를 근원적인 언어로 이해하고 있다. 심지어는 {시짓기Dichten/ 사유Denken/ 감사Danken}를 동궤의 것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게 시라면, 그것은 곧 다르게 듣고 다르게 본다는 말이다. 생후는 말할 것도 없고 생전에조차 듣도 보도 못한 시로 인해 우리는 무한의 차이를 꿈꾸며, 타자(의 타자)성을 추구하게 된다. 처음의 말로서 시를, 세계와 언어와 사물을 진심으로 대한다면 거기, 시가 존재하는 것이다. 오촌 당숙의 말을 빌려 표방한 (非)常의 시법은 「시」에 와서 더욱 재미있고 새로운 진경을 펼쳐 보이고 있다.
-김상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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