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 지음/민음사·9000원
신현림의 다섯번째 시집 <반지하 앨리스>는 안국동 반지하 생활 10년의 소산이다. 책에는 “8년 일해 번 돈을 잃고/ 8년째 반지하 방을 못 나오는”(‘물음 주머니’)이라는 대목도 있거니와, 뜻밖에 당한 사기는 그렇잖아도 힘겨운 ‘싱글맘’의 삶을 반지하 방의 어둡고 차가운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하루 햇빛 한 시간도 안 되는/ 끔찍한 반지하 인생/ (…)// 달이 달로 보이고/ 구름이 구름으로 느껴지게/ 햇살 넘치는 하루가 너무나 그리워”(‘광합성 없는 나날’ 부분)
“나는 해진 신발이다 아무 쓸모없고 슬프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에게도 갈 힘이 없다/ 나는 안개에 젖은 나무이며/ 아무것도 넣고 싶지 않은/ 텅 빈 자루다”(‘우린 똑같은 사람이다’ 부분)
광합성을 못한 채 안개에 젖은 나무, 또는 해진 신발과 텅 빈 자루에 견주어지는 삶이라니.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와 <세기말 블루스> 같은 강렬한 제목을 지닌 시집으로 세기말의 감성을 이끌었던 그와는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비유란 말인가.
“사람들이 저를 ‘잘나가는 시인’으로 오해하는 것 같아요. 시뿐만 아니라 미술 관련 에세이도 내고 사진도 찍고 하니까 제가 화려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제 시집 제목들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저라는 사람이 드셀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 같기도 하구요.”
시집 ‘반지하 앨리스’를 손에 든 신현림 시인이 갤러리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자신이 살아온 공간 등을 찍은 작품 앞에 서서 웃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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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all/20170808/85724143/1#csidxef410b39dda4810979bb304610bc10e
반지하 생활 10년의 경험을 담은 시집 <반지하 앨리스>를 낸 신현림 시인. “젊은 시인들이 현실에 대한 절망과 좌절에서 언어 놀이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답이 아니라고 본다”며 “시인은 시대의 증언자로서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반지하 앨리스>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류가헌(流歌軒)에서. (사진 _동아일보 박영대 기자)
2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잘나간다는 오해 때문인지 아니면 인맥과 연줄이 없기 때문인지 지원금 신청 같은 데에서도 번번이 탈락했다”며 “그럴 때는 문단이 이상한 곳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집에 담긴 그의 삶은 화려하고 드세리라는 세간의 오해와는 천양지차다.
“남 술 마시고 섹스할 때 나는 일했다/ 미치도록 뜨겁게 어디든 굴러가는 바퀴였다/ 한 부모 가장은 잠자면서도 일한다”(‘세 평 시 정류장-바퀴’ 전문)
“요즘은 가는 곳마다 벼랑 같아/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물음이 울음으로 끝나지 않게// 나 대신 비명을 지르며 유리창이 흔들린다// 아, 아프다고 외치지도 못하는 저녁에”(‘물음 주머니’ 부분)
극도의 가난과 절망은 종종 자살의 유혹을 불러왔지만, “인생이 신기하고 궁금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을 키워야 해서”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1’). “힘든 순간을 잘 넘기면 절망과 상처는 오히려 상상력에 도움이 되더라”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연작들과 ‘가난의 힘’ 같은 시들은 절망과 삶과 상상력 사이의 그런 역설적 관계를 보여준다.
“온 힘을 다해 살아도 가난은 반복된다/ 가난의 힘은/ 그래도 살아가는 것이다”(‘가난의 힘’ 부분)
“골고루 똑같지 않은 세상/ 외롭지만 외로움으로 빛을 찾고/ 힘겹지만 힘겨움으로 힘을 찾고”(‘여자라는 외로운 여자’ 부분)
1990년에 등단해 28년째 시와 산문을 쓰는 전업 시인으로 살지만, 인세 수입만으로 생계를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강의와 들쑥날쑥한 학교 및 도서관 강연, 사진 작업을 통한 약간의 수입 등으로 근근이 버티는 중.
“전업작가이기 때문에 시집 말고 에세이집과 미술 관련 책도 여럿 냈는데, 출판 시장이 어렵다 보니 인세가 전 같지 않아요. 그래도 죽어라 하고 작업을 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요.”
이번 시집에는 촛불집회에 관한 시도 여럿이고 혁명을 제목 삼은 시들도 있는데, 그가 꿈꾸는 혁명은 뜻밖에도 소박하다. “반지하 내 집을 기중기로 들어 올려/ 1층으로 끌어 올리는/ 혁명을 나는 꿈꾸네”(‘혁명을 꿈꾸는 사람’). 그러나 이런 소박한(?!) 바람을 품기 위해 거창하게 혁명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처한 상황의 열악함을 거꾸로 보여준다 하겠다.
실제로 혁명이 일어난 건 아니지만, 그는 불과 스무날 전 기적처럼 반지하를 벗어났다. 집주인의 일방적인 통보에 집을 비워야 했는데, 다행히도 급한 전세 매물을 만나 비교적 좋은 조건에 서촌의 지상층으로 옮겨 올 수 있었다. “반지하 방에서조차 쫓겨날 때는 절망적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집주인에게 고마운 마음도 든다”며 “2년 뒤에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행복하다”고 그는 말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2017-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