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시문학 12월호 이달의 문제작
-역사 속에서의 자아읽기와 상상력의 시
등 돌리고 달아나는
봄기운 불끈 잡아당기다
낭패를 본 나무는 안다
속 얼마나 썩어야 등이 휘는지를
양지의 등쌀에 떠밀려
찬밥 신세가 되어본 사람은 안다
속 얼마나 비워야 등 굽힐 수 있는지를
-김욱진「등나무」부분
월평을 쓸 무렵에 마침 대구에서 김욱진 시인이 새 시집 『참, 조용한 혁명』을 보내왔다. ‘시인이 자연과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 서정적 자아를 길어 올릴 때는 휴머니티humanity로 착색된 따스한 가슴 열기로 사랑과 연민憐憫의 정서를 떠올리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서정적 자아가 내부로 향할 경우에는 불교적 사유思惟를 바탕으로 한 형이상학적인 이데아 추구와 불성佛性에 이르려는 구도求道에의 길 찾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양상을 띠고 있다.’라고 이태수 시인이 말미의 해설에 쓰고 있다.
위의 시「등나무」는 등나무의 굽은 ‘등’과 사람의 ‘등’을 동음이의어로 환치하고 있다. ‘속 얼마나 썩어야 등이 휘는지를’ ‘속 얼마나 비워야 등 굽힐 수 있는지를’ ‘등나무의 등이 얼마나 유연한지를’등에서 진술적인 시행, 반복되는 통사구조를 배치하여, 사람살이의 어려움과 올곧게 살아가기의 고단함과 지난함을 알레고리로 표현해놓고 있다. 직설적인 문장이지만, ‘등나무’라는 객관상관물의 삶에 대입시킨 ‘올곧게 사는 길’의 사람살이기에 독자에게 구체적인 실감으로 다가오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시인의 상상력과 발견의 눈이 있기에 가능한 표현이다. 시「연등」에서도 시인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나무=나무(南無)의 연상으로 이어지는 ‘부처님에게 돌아가 의지하는 나무’를 제시하여 수행하는 나무, 수행하는 자신을 ‘등공양 인연 한 번이라도 지었으면’하는 바람으로, ‘수 겁의 천생연분이겠다’라고 희구(希求)하고 있다.
-이혜선(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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