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절절/사윤수

김욱진 2017. 10. 29. 08:25

           절절

                사윤수

 

대비사 돌확에 약수가 얼었다

파란 바가지 하나 엎어져

약수와 꽝꽝 얼어붙었다

북풍이 밤 세워 예불 드릴 때

물과 바가지는 서로를 파고들었겠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서로를 꽉 잡고 놓지 않았겠지

엎어져 붙었다는 건

오지 말아야할 길을 왔다는 뜻, 그러나

부처가 와도 떼어놓을 수 없는 이 결빙의 묵언수행을

지난밤이라 부른다

내가 잃어버린 지난밤들은

어디로 가서 철 지난 외투가 되었을까

돌확이 넘치도록 부어오른 얼음장이

돌아갈 수 없는 길의 발등을 닮았다

봄이여, 한 백 년 쯤 늦게 오시라

차갑고도 뜨거운 화두에 거꾸로 맺힌 저 대웅전

파란 바가지 한 채의 동안거가

절절 깊다

고요가 가슴이라면 미어터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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