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詩

발가락에 대하여/박언숙

김욱진 2017. 11. 1. 08:35

       발가락에 대하여

           박언숙

    

보도블록 위를 알짱거리는

비둘기 발가락을 무심코 본 후로

종종 걸음 멈추고 안쓰럽게 세는 버릇

발가락 하나가 잘리고 없는 놈

그나마 둘 달린 놈

드물지만 한 쪽 발가락을 다 잘리고

뒤뚱거려서 애가 쓰이는 녀석도 보인다

배고픈 날 서대구공단 야적장을 뒤진 모양이다

명줄만큼 질긴 나일론실에 걸렸을 것이고

올가미에 졸려서 질식된 발가락이 말라서 떨어진다

작두에 잘린 할머니 집게손가락이 보인다

겨울이면 그 손가락이 시려 콧김 호호 쐬면서

손발이 성해야 벌어먹기가 수월하다는 넋두리

잠금장치에 갇혀 군말 없던 내 발가락들

곰팡내로 밀폐된 독방살이를 이젠 알겠다

밥벌이에 골몰해 손발가락 내줄 뻔했던 일

바쁜 걸음 멈추고 비둘기 발가락을 보다가

내 손발의 품삯이 얼마나 송구스럽던지

꼼지락거리며 엎드려 경건하게 아는 체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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