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
한상권
주산지에서 풍경화를 그리다가
왕버들나무처럼 온몸이 젖어 있다가
야송미술관 옆 넓은 밥집 마당으로 옮겼다.
송소고택의 헛담에 대해 이야기하며
잠시 단풍과 단풍 사이를 붉게 거닐었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진 창가에 앉아 점심을 먹는 것인데
갑자기 작은 새 한 마리가
가을 식당 통유리에 부딪혀 기역자로 꺾였다.
누군가 단지 유리창 밖의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느 우주에선가 온몸을 던져
지워지지 않는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옹호했지만
텅 빈 구두로 가득 찬 밥집을 걸어 나오면서
발 앞에 떨어진 단풍잎 하나를 주우면서
온몸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닿지 않는 길 위에서
문득 가을이라는 유리 속에서
새와 세계와 나의 관계를 보는 눈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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