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한상권
나는 자유롭다고 말하지만
한순간도 자유롭지 못했음을 복기한다.
너는 내 목소리에 순정이 있다 말하지만
다른 이가 닦아놓은 길을 걷고 있을 뿐,
이 옷이 정말 내게 잘 어울리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보다
다른 이의 낯선 시선만 너무 쉽게 단정할 뿐이다.
한 번도 제대로 스스로를 그려보지 않고
이것은 내 것이라고 한바탕 진한 농을 한다.
새 책 소식과 어느 가수의 신곡 발표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의견을 내놓지만
그것은 정작 내 것이 아니라
어느 잡지의 말랑말랑한 서평과
롤랑 바케트와 TV 연예가 중계에서 그려놓은 길을
마치 내가 길을 내고 온 것처럼 깔깔댄다.
사무치고 사무쳐서 뿜어낸 질문은 무엇이 있는지
목소리가 떨려도 나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내가 정말 나인 듯 내게 다가와서
고갱의 질문*에 다시 한 번 답해봐야겠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또박또박 되짚어봐야겠다.
* 폴 고갱의 그림,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단디』, 문학의전당,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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